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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20

우리 사위는 묵도 잘 쑤네

by 그리여

엄마는 웬만한 음식은 다 해보셨는데 묵 쑤는 걸 한 번도 해보지 않으셨다고 했다


어느 해인가 막걸리에 솔잎을 넣고 한약재를 넣어서 막걸리를 만드신 적이 있다

내편은 인생 통틀어 가장 맛있는 막걸리라고 또 먹고 싶다고 한다


특별식은 뭐든 한 번 만드시면 다시 하지는 않으셨다

손이 빨라 음식을 뚝딱 잘 만드시긴 하셨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은 잘 안 하시는 편이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도 엄마만의 창의성을 발휘하여 쉽게 후딱 만드시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늘 바쁘셨다 뭐든 빨리 하는 성향이 한몫을 하기도 한 것이리라

그랬던 엄마가 묵은 한 번도 안 쒀보신 거다


시댁은 도토리 가루를 직접 내려서 명절이면 묵을 빼놓지 않고 쒔다

서서 계속 쉬지 않고 저어야 하기에 묵 쑤기는 항상 내편이 담당했다

묵을 쑤는 건 쉽다

가루를 풀어서 그냥 한쪽으로만 계속 저으면 된다

그러다가 기포가 올라오면 콩기름과 소금을 적당히 넣고 뚜껑을 닫아 5분 정도 뜸을 들이면 된다

그리고 네모난 그릇에 부어서 굳히면 끝이다

솥에 남은 묵 누룽지를 긁어서 먹으면 그것 또한 기가 막히게 맛있다


굳힌 묵을 엎어서 도마 위에서 자르기 전에 툭 쳐서 파르르 떨면 잘 쒀진 거다

사는 묵과는 절대로 맛을 비교할 수가 없다

맛 자체가 이미 고급이다

도토리묵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맛있다

시중에서 파는 건 먹고 싶지 않으니까


오래전 엄마가 계시던 시절이었다

명절 지난 어느 날 엄마에게 묵을 쒀 드리고 싶어서 묵 가루를 가지고 시골로 내려간 적이 있다

가루에 물을 7배 정도 부어서 섞고 한쪽으로 젓기만 하면 돼

하고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가 신기하게 쳐다본다


집에서 내린 가루는 물을 좀 더 넣어야 돼서 7 배지만 사는 건 5~6배 정도만 넣으면 된다

그렇게 가루를 풀어서 슬슬 저으면서 묵을 쑤고 있는 내편을 보시더니

아이고 우리 사위는 묵도 잘 쑤네 하셨다

엄마가 너무 신기하게 보셔서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엊그제 같기만 하다


파송송 썰어 맛나게 만든 양념장에 묵을 푹 찍어서 맛을 보게 해 드렸다

아이고 참 맛나다 어째 이런 것도 다 할 줄 아노 내가 갈켜 주지도 않았는데 못하는 게 없데이

엄마가 맛나게 드시는 걸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이번 명절에 오랜만에 묵을 쒔다

완전히 업그레이드된 실력으로 간도 잘 맞추고 기름도 들기름을 썼더니 훨씬 더 맛있었다

애들은 원래 묵을 잘 먹지 않는데 이번에는 너무 잘 먹었다

지인에게도 나눠줬더니 맛있다고 잘 드셨다고 한다


묵은 어렵지는 않은데 팔이 아프다 그래도 내편은 진득하게 서서 잘 젓는다

한쪽으로만 계속 젓는 게 정말 중요한 게 또한 묵 만들기이기 때문이다


도토리 가루가 없어서 할 생각도 안 하다가 문득 마트에서 판다는 생각이 났다

그렇게 도토리묵을 쒀 볼 엄두를 내었던 것이다 가루를 사서 하니까 편하긴 하다

묵가루 내리는 것만큼 인내와 시간을 요하는 게 또 없다

너무나 지루한 작업을 시간을 두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묵을 쑤고 있는 내편을 보고 있노라니 엄마가 생각났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묵 쑤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보셨던가

엄마는 지금 내가 이렇게 묵을 쑤면서 그리워하고 있는 걸 알까


시간이 흘러도 먹거리는 언제나 보고 싶은 그리운 이들을 소환한다

먹으면서 같이 즐겼던 그 시간들이 오롯이 생각이 난다

타임머신은 내 안에 있다

언제든 시간을 되돌려 갈 수가 있다

다만 온기를 느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 시절을 기억 속에만 저장해 둔다


가끔 그리움이 묻어나는 먹거리를 꺼내보고 그 시절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엄마가 해 주었던 사랑 가득한 음식은 오래도록 나의 마음을 흔든다

아이들도 그 추억의 한 자락을 붙잡고 있다

할머니가 해주신 된장찌개와 쑥절편이 먹고 싶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음식으로 연결되어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마음이 아려온다



20화를 끝으로 연재를 갈무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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