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17

네가 한 게 맛있겠냐

by 그리여

시아버님은 별로 식성이 까다롭지는 않으셨는데 안 드시는 건 확고했다

비린 거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음식에 식초가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셨다

묘하게 나의 식성과 비슷하여 좋았다

음식을 할 때는 집안의 어른 입맛을 따라서 하기 마련이니까


결혼을 하고 같이 살면서 음식을 하는데 많이 서툴렀다

자취를 하면서 해먹은 음식이 별로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친정과 시댁은 음식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그러다 보니 늘 옆에서 보면서 음식 하는 걸 익혔다

그러다가 조금씩 나의 스타일로 하게 되었고 다행히 모두가 좋아하고 잘 드셨다


음식이 서툴었던 결혼초에 손님을 대접할 상황이 되었다

반찬을 이것저것 만들기는 하지만 손님초대 음식은 할 줄 몰라 옆에서 보조 역할만 하였다

그러다가 무침을 하나 내가 맡게 되었다


도라지 무침

보통 도라지 무침은 새콤 달콤하게 무친다


난 아버님이 식초 들어간 걸 좋아하시지 않으시니 아버님 식성에 맞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시지 않은 걸 좋아하기도 하고 어쨌든 내가 맡은 거니까 내 스타일로 해버렸다


고추장에 고춧가루, 마늘을 넣고 조청을 조금 넣고 참기름을 넣는다

도라지는 소금으로 박박 문질러서 씻어서 물에 좀 담가두고 물기를 빼두었다

양념에 도라지를 넣고 잔파도 넣고 깨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평소에는 아버님이 집에 계시지 않는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나가지 않고 계셨다

마침 식탁에 앉아계셔서 나는 아버님에게 간을 보여주게 되었다

아버님 이거 간 좀 봐주세요

네가 한 건데 맛있겠냐 하고 아버님이 간을 보신다

나는 맘을 졸이고 쳐다보았다

내가 한 거라 맛이 없어서 안 드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버님 어때요 했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시고 몇 번을 집어 드셨다

됐구나 싶었다

평소에 밖에서 농담을 잘하신다는 아버님을 뵐 수가 있었다

사실 집에서는 거의 말씀을 잘하시지 않았다


내가 만든 반찬을 드시고 농담을 해 주셔서 그다음부터는 음식을 하는데 별로 긴장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아버님 입맛에만 맞으면 다 된 거지 하고 생각했다


다른 식구들과 손님들도 내가 다르게 한 도라지 무침이 맛있다고 잘 드셨다

그 이후로 난 약간 심심하고 단조롭게 드시는 시댁 음식을 조금씩 바꿨다


아버님이 잘 안 드시던 것은 연구하여 다시 해서 드렸다

삼계탕도 닭비린내가 난다고 드시지 않았는데 내가 냄새를 잡아서 해 드린 건 잘 드셨다

원래 잡채도 잘 안 드셨는데 내가 하고부터 막걸리 한잔하면서 잘 드셨다


요즘은 명절에 아버님이 안 계시니까 술상을 펼 일이 없다

내가 아침에 잡채를 하면 간식으로 막걸리와 드시던 모습을 이제는 뵐 수가 없다

대신 아버님 닮은 내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가끔 귓전에 맴돈다

네가 한 게 맛있겠냐 하고 농담을 던지며 웃으시던 아버님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먹거리

#도라지무침

#시아버님 #잡채

keyword
이전 16화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