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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15

첫 이유식은 동치미

by 그리여

시아버님은 아이들을 무척 이뻐하셨다

온 동네 애들이 다 아버님을 좋아했다

애들은 자기를 이뻐해 주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부지런하시고 동네 골목까지도 새벽같이 쓸어놓으셨다

아버님이 계신 주변은 동네조차도 깔끔하였다


큰애는 낯가림이 너무 심하여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버님에게는 잘 안겨있었다

아버님이 집에 잘 계시지 않아서 자주 돌봐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얌전하게 있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누가 안기라도 하고 보기만 해도 큰 소리로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였다

그래서 누구에게 맡기기도 힘들었지! 난 아버님이 외출하지 않고 집에 계실 때가 좋았다

잠시나마 아이를 맡겨두고 집안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큰애가 태어나고 나는 모유수유를 고집했다

모유가 얼마나 좋은지 들었기 때문에 무조건 모유수유를 끝까지 해야겠다고 나름 결심하였다

그런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모유는 양이 부족해서 하루 여섯 끼를 먹고 겨우겨우 수유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집안일과 육아에 나의 몸은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정도로 야위어 갔다


가족들은 모유를 끊으라고 난리였다

그래도 6개월까지는 버티고 나서야 모유를 끊었다

더 못 먹여서 미안했어 그런데 다행히 큰애는 인공젖꼭지도 무난히 빨아서 분유를 먹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잘 먹고 잘 크는 아이를 보는 게 좋았다

그러다가 이유식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첫아기라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뭘 먹여야 할지 몰랐다


아버님은 큰 애를 무릎 위에 앉히고 동치미 국물에 밥 한 톨을 적셔서 입에 넣어주셨다

신기하게도 아기가 그걸 받아서 오물오물 잘 먹었다

난 그게 기특해서 한참을 봤다

미음을 해주면 잘 먹지 않아서 뭘 먹여야 할까 고민이 되던 참이었다


역시 아기들은 미식가로구나

약간의 간이 되어 있어야 하고 맛이 있으면 더 잘 먹는 거였다

잇몸으로 씹어도 씹는 맛을 느껴야 하는 거지


그렇게 우리 집 애들은 모두가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첫 이유식을 동치미로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면 동치미는 김장 김치보다 먼저 담근다

작은 크기의 천수무를 깨끗이 씻고 소금으로 굴려서 살짝 절여놓는다

무가 적당히 절으면 물을 채우고 그 위에 갓과 쪽파로 덮어 주고 고추씨를 티백에 담아서 넣는다

빠지면 안 되는 필수 재료는 삭힌 고추다

청양고추 삭힌 거를 넣어야 비로소 동치미의 고유맛이 난다


조기교육으로 길든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동치미는 잘 익으면 언제나 그렇듯이 고구마를 찾게 된다

동치미가 익으면 아이들은 꼭 먹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특유의 개운하고 시원한 동치미 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으니까

자연숙성으로 달지 않고 사이다같이 시원한 맛이 나는 걸 좋아하고 찐으로 담근 동치미가 아니면 먹지를 않는다


나는 원래 동치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잘 먹으니 계속해서 먹다 보니 동치미의 맛에 빠져들었다

애들은 조기교육처럼 동치미를 먹어서 좋아했고 난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이 새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이제야 동치미 맛에 빠져들었다

동치미 만드는 것도 노하우가 생겨서 더 맛있게 만들고 겨울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밑반찬이 되었다


오븐에 구운 고구마를 반으로 딱 쪼개면 노란 속이 보이고 김이 모락모락 나며 침이 고이게 된다

한입 베어 물면 뜨거워서 이리저리 굴리게 되는데 그때 동치미를 한입 떠서 입에 넣으면 그야말로 환장할 궁합이다

동치미를 몰랐을 때는 그 맛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일단 먹어보면 한 번만 먹을 수는 없는 맛이다


아버님이 아이들에게 동치미를 뜬 숟가락을 갖다 대면 작은 입술을 쭈욱 내밀며 할아버지를 보던 맑고 큰 눈의 아기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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