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할머니와 상추쌈
할머니는 내가 추울까 봐 겨울에 이불 속에 들어가셔서 이불을 데워놓으셨어
손주의 사랑이 대단하셨던 할머니 얘기를 내편에게서 많이 들었다
난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할머니란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했고 정 들이고 분가시켜 주겠다는 아버님의 뜻으로 시댁시구들과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시댁에는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가 계셨다
허리는 90도로 굽어서 하늘을 보기가 힘드셨다
접힌 배 사이에는 습기가 차니까 곪지 않게 파우더를 발라야만 했다
할머니는 머리를 곱게 빗어서 쪽을 지고 계셨다
사극에서만 보던 머리였기에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불편하시지는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늘 단정하게 하고 계셔서 관리하는 걸 못 봐서 그런가 불편함이 와닿지는 않았다
말수가 별로 없으시고 감정을 쉬이 표현하시지도 않으셨다
그러신 분이 내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표현했다고 하니까 괜히 나도 할머니에게 애정이 솟아올랐다
평소에 식사도 거의 소식이었다
동치미를 잘게 썰어서 국물이랑 주고 반찬 하나정도 겨우 드셨지
원래 입이 짧으셨나 뭘 잘 드시지 않았다
난 큰애를 배속에 품고 있어서 그런 할머니께 생각보다 다정하게 하지는 않았어
직장 다니고 입덧하고 나도 처음 겪는 나의 상태에 힘이 들어있던 상태였으니까
지금이었다면 이것저것 맛난 거 많이 해 드렸을 텐데
어느 날 할머니가 피아노 의자 위에 앉으셔서 물을 푸는 시늉을 하셨다
약간의 치매가 오신 거래서 걱정을 했는데 일주일 정도 그러시다가 곡기를 끊으셨지
평소 성향대로 아프신 것도 얌전하게 아프신 할머니가 마음이 아팠지
기역자로 굽을 허리를 새우처럼 웅크리고 옆으로 누워계신 것도 보기에 안쓰러웠다
일주일 때쯤 되었을 때 겨우 말씀하셨어
상추쌈이 먹고 싶다
할머니가 드시고 싶은 게 있다는 게 반가워서 난 얼른 상추를 사러 나섰다
어머님은 드시지 않을 거라 말렸지만 난 왠지 드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고 싶었다
새벽이라 문 연 곳이 없어서 온 동네를 돌아다녔어
그러다가 불이 켜지는 한집을 발견하고 문을 두드려 겨우 살 수 있었어
만삭의 몸으로 돌아다녀 고단했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체할 수 없었다
부지런히 집에 와서 상추를 씻어서 따뜻한 밥이랑 드렸지
할머니가 일어나시더니 아주 맛나게 드시는 거야
뿌듯했어 이제 기력을 회복하시려나 했지
그러곤 다시 누워서 일어나시질 않으셨다
사람들은 후에 말했다 마지막 식사를 하신 거라고
기역자로 굽은 허리는 아버님이 쉬지 않고 주무르셔서 허리를 반듯하게 바닥에 붙이시고 다리를 쭉 펴고 누우셨다 그제야 할머니 키가 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나 편안해 보이시던지 주무시는 듯 보였다
오후에 마지막으로 변을 보시고 주름이 펴지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면서 고운 얼굴로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가까이서 임종을 지켜본 건 할머니가 처음이었다
가족들은 배 속에 아기가 있으니 보지 말라고 했지만 난 할머니 가시는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내 배속의 증손주를 보고 싶어 하셨지
사람들은 할머니가 증손주를 너무 사랑하셔서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열흘이 지나고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차가운 겨울의 이른 새벽에 큰애가 태어났다
눈이 크고 예쁜 이 아이를 할머니에게 못 보여주어서 서운했다
내편을 사랑하시듯 많이 사랑해 주었을 텐데
이맘때가 되면 가끔 쪽진 머리가 곱던 시할머니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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