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먹고 싶진 않았는데
아버님은 동네친구들과 여름에 물가로 나들이 가시면 투망을 늘 도맡아서 치셨다고 한다
훤칠한 키로 투망을 휙 던지면 그리 멋있었다고 한다
투망은 어려워서 아무나 쉽게 치지는 못한다고 한다
내편이 내게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없어서 보지는 못했다
고기를 잡기는 했지만 집에 가지고 오시지는 않았다고 하신다
투망 치는 것만 좋아하지 드시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지만, 시이모님들이 매운탕을 좋아하셨기에 가끔은 미꾸라지를 잡아오시기도 하셨다
시골에 땅이 있지만 농사를 짓지 않았는데 아버님 친구들이 같이하자고 성화를 부려 시작하였는데, 그 친구들은 힘들다고 6개월도 안 돼서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아버님은 힘든 걸 아시니까 안 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시작했으니 놓지도 못하고 그 노동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되었다 주말이면 쉬지도 못하고 농사지으러 갔으니까
노는 땅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빈틈없어 작물을 심으시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셨다
빈 땅이 보이면 전부 일거리로 보였다 아버님이 촘촘히 심으면 관리해야 하고 수확을 해야 하니 일거리는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하고 기록도 하면서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우리 부부는 농사를 제법 잘 짓게 되었다
경기권이라 다행이긴 했지만 뙤약볕에 쉬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겨 일을 하고 오면 온몸이 쑤시고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때의 기록들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히게 일을 하고 왔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아버님은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농사를 어찌나 잘 지으셨는지 손이 닿은 곳은 티가 났다
주변은 잡초하나 없이 깨끗하게 손질하여 둬서 늘 빛이 났고 수확하는 작물은 항상 품질과 맛이 최고였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도 힘이 들고 고된 게 농사인지라 날로 힘들어하시는 게 보였음에도 농사를 접지 못했고
우린 외면할 수 없어 서울에서 주말에 오가면서 덩달아 골병이 쌓여가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 시댁 외갓집을 갔다
농사를 마무리하고 그날은 일이 있어 오신 시이모님들이랑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모님들은 매운탕을 무척 좋아하셨다
아버님이 미꾸라지를 가지고 오셨다
이모님이 우당탕우당탕 처절한 미꾸라지 손질을 끝내시고 깨끗이 씻어둔다
시골 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들기름을 두르고 미꾸라지를 넣는다
미꾸라지가 흐물흐물 들기름에 삭으면서 뽀얗게 우러나면 국물을 더 붓고 양념에 버무린 시래기와 대파도 듬뿍 넣는다
갖은양념을 한 추어탕은 맛있는 냄새로 온 동네를 덮었다
들기름 냄새에 식욕이 돋는다
가마솥에서는 김이 폭발하듯 하늘로 치솟고 냄새는 기가 막혔다
구수한 시래기가 푹 익어 가면서 양념과 어우러져 맛있게 나는 냄새에 다들 군침을 삼킨다
서울에서 보던 그런 추어탕이 아니라, 맛있게 은근하게 푹 끓인 매운탕 같은 추어탕을 떠서 다들 한상에 둘러앉는다
나는 원래 향신료를 좋아하지 않아서 추어탕을 먹지 않았다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하여 넣는 산초나 제피 냄새가 거슬리고 식욕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날은 구수한 시래기 냄새에 먹을 맛이 났다.
양념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칼칼하게 매운탕처럼 끓여서 비린내도 나지 않았고 시래기는 가마솥에서 푹 익어 부드러웠다
그래도 약간의 형체가 남아있는 미꾸라지는 거슬러 살포시 밀어뒀다
추어탕을 먹고 있는 나를 보시던 아버님은
하니어미가 웬일로 잘 먹네 더 줘라
평소에 하도 안 먹어서 늘 권하셨는데 난 끝가지 안 먹던터였다
그런 내가 추어탕을 먹고 있으니 아버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더 주라고 성화셨다
많이 먹어라
이모님이 듬뿍 떠서 주는데 난 고맙습니다 하고 웃었다
사실 더 먹고 싶지는 않았다
시래기를 좀 먹고 숟가락을 놓으려던 참이었다
난 비린내를 싫어해서 비린 종류는 잘 안 먹는 편이다
냄새에도 예민하고 식감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좀 거슬리는 것을 먹으면 영락없이 속이 불편해진다
귀하게 자라지도 않았는데 먹는 거에는 까탈스럽다
어려서 다양하게 먹어본 게 없으니 늘 익숙한 것만 먹게 된다
그게 속이 편하니까 억지로 먹지는 않는 것이다
굳이 싫은걸 먹지 않아도 먹을 것이 많은 세상이지 않은가
타고난 속이 부실하다 보니 불편한 음식은 꺼리게 된다
식으면서 간간히 풍기는 비린내가 예민한 후각에 거슬렀더랬다
미꾸라지를 숟가락으로 밀치며 먹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늘이 없는 고기가 맛있다고 한다
뭔가 달달하면서도 얼큰하고 입맛을 돋우는 게 매운탕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식재료인 것이다
각종 야채와 시래기를 듬뿍 넣은 가을 추어탕은 몸보신으로 으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몸에 좋은 것보다는 그냥 무난하게 먹어서 속이 편한 게 더 좋을 뿐이다
아버님이 더 먹으라고 권하신 덕분에 그날은 추어탕을 배부르게 먹었다
다행히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먹고 싶지는 않았던 그날이 가끔 생각난다
추어탕이 맛있어서 생각이 나는 건지 아버님과 같이 추어탕을 먹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생각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버님이 투망을 치시던 모습을 못 본 게 아쉬워서 한 번씩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그때의 매운탕 같았던 추어탕은 두 번 다시 못 먹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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