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서면서 뭔가 억울한 표정을 하더니, 폭풍 랩을 하듯이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풀어놓는다.
서이 : 컴퓨터를 켰는데 이상하다 왜 안되지? 큰일이다 재부팅하는 게 있어서 띄워놨는데, 다른 동료가 와서 보더니, “지금 얼마 나아....”하면서 얼버무리고 컴을 보고는 그냥 가버리는 거야
그냥 도망치듯 가버리는 거야 나 몰라라 외면해 버리는 거야
“어 어” 이러더니 그냥 휙 가 버렸어. 순식간에 다 보기만 하고 그냥 말없이 갔어
맘 : 고칠 자신이 없는 거구나
서이 : 내가 보여주니까 다들 “엥?” 이런 느낌인 거지. 아! 진짜 너무 화가 나더라고. 왜 항상 나에게만 이런 억까가 일어나는가
맘 : 억까가 뭐야?
서이 : ‘억지로 까이는 일이 생긴다’, ‘억까당하다’라는 말이 있거든. 뭘 하지도 않았는데, 이거는 진짜 억울한 일이 생긴다는 거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하는 뭐 이런 억울한 기분인 거야
맘 : 아 그런 거구나! 재밌는 말이네 왠지 단어에서 이미 억울한 기분이 확 든다.
요즘 아이들의 은어는 전혀 뜻도 모르겠는 신기한 단어가 많다. 그런데도 뭔가 들으면 귀에 꽂히는 것도 있어서 나름 재밌다.
물론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이 훼손되는 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온라인상으로 대화하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짧게 쓰려다 보니 그런 줄임말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시대가 변하니 언어도 변하고 세대 간의 격차는 그 언어로 인하여 소통이 더 어렵게 되기도 했다.
맘 : 근데 컴 오류는 어떻게 해결했어?
서이 :그냥 뭐 내가 핸드폰으로 찾아가지고 뭐 하는 법 눌러 가지고 열심히 해 가지고 다행히 해결이 돼 가지고 어찌어찌 되더라고
맘 : 그렇게 하면서 네가 컴퓨터 오류 해결하는 걸 하나 배웠네! 엄마도 신입 때 그렇게 하면서 늘었어. 일하면서 컴 문제만 해결해도 일이 수월하지. 오류는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애써 해 놓은 일 도로아미타불 안되게 하는 게 중요하지
서이 : 순간 언니한테 전화해야 하나 고민했어
맘 : 너 그러면서 실력이 느는 거야
서이 :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
맘 : 컴퓨터로 일할 때 오류가 생기면 고치는 것도 능력이야! 매번 사람을 부르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일이 지체되니까! 이게 짬에서 나오는 거지 이미 넌 한 번의 경험치가 쌓인 거야”
서이 : 몰라! 나 1일 1 사건이고, 1일 1 실수에 너무 힘들어! 그냥 뭔가 하루에 하나씩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거야! 왜 나한테만 이런 거지 그러니까 내가 억까당하는 느낌이라니까!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가끔은 어쩌다 보니까 화살이 다 나한테 돌아와. 그러니까 사람이 이게 처음부터 약간 어버버 한 이미지가 잡혀버리니까 모든 걸 다 내 탓으로 돌리는 거지 난 이게 너무 화가 나는 거야
맘 : 네가 야무지게 반박해야지
서이 : 근데 나 때문이었던 일도 많았으니까 나 때문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난 회사 가면 머리가 새하얘진다니까
맘 : 그래도 차근차근 얘기해 봐야지
서이 : 그건 우길 일이 아니야 엄마! 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확신 없이 우길일이 아니야
실수했으면 차라리 빨리 인정하고 해결하는 게 나아
맘 : 그건 잘한 거야 괜히 변명하면 상대의 분노를 일으키거든
서이 : 어쨌거나 너무 힘들다
맘 : 엄마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데 신입인 간호사가 배우면서 옆에 있었어 근데 단추를 못 끼우더라고 난 그냥 가만히 있었지 기다려줬지 그랬더니 "이걸 왜 못 끼워요" 하고 선배 간호사가 뚝딱 해줬어. 별일도 아닌 것이 안 되는 게 신입인가 봐
서이 : 떨려서 그랬는가 보네 아는 것도 머리가 하얘지면 눈에 안 들어오거든
서이 : 내 친구도 이 일을 하잖아 그래서 가끔 얘기하면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맘 : 그 친구는 편하다고 하지 않았니?
서이 : 걔도 겪어보다 보니 그 나름의 사정도 있고, 거기도 뭔가 심해. 어쨌든 이 업종이 힘든데 좋은 소리는 못 듣고, 워라밸도 없고 그러니까 다들 힘들어하는 거긴 해
서이 : 아무튼 공부를 많이 해야겠어 능력이 돼야 하는 거니까
다짐을 하는 서이를 보면서 오늘도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왜 이렇게 뜻대로 되는 게 없고, 무슨 일을 하면 잘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은가! 왜 나에게 시련을 주는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인생의 일 부부인 것을...
서이는 지금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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