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같이 우렁찬 계곡 물소리에 홀렸다

절 담벼락에 켜진 등불

by 그리여

서울에서 퇴근하고 강원도로 출발하다 보니 칠흑같이 어두운 늦은 시간. 두타산에 도착하게 되었고, 시골 동네라 가로등이 변변치 않아서 한 치 앞도 가늠하기가 어려워서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렌트로 길을 밝히고 산 입구를 향해 갔다.

일단은 텐트를 칠만한 곳이 나올 때까지 걷기로 결정하고 직진했다.

목영이는 걸음이 빨라 먼저 앞서 나갔고 산이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뒤따라갔다.


오솔길이 보이길래 입구 같아서 들어섰는데 계곡의 물소리가 엄청 커서 깜짝 놀랐다.

너무 조용하니 더 크게 들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목영아!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친구를 산이가 크게 불렀다.


계곡 물소리에 묻혀서 자기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계곡길을 쭉 따라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길이 사라지면서 앞서 간 목영이는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한겨울의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니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빨리 텐트 칠 곳을 찾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서둘렀지만 주변이 잘 보이지 않으니 낭패였다.

산이는 어두운 계곡에서 길을 찾느라 고군분투했다.

점점 더 깊은 계곡으로 홀린 듯이 걸어갔다. 마치 물이 부르는 듯이 이끌리듯이 걷다 보니 길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단은 포기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는데 저 앞에 담벼락이 보였다.

절 같은데 등이 하나 켜져 있어서 밝아지니 앞길이 보여서 '절인가? 어쨌든 다행이다!' 생각하며 그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한참을 기다시피 올라와서 바닥을 보니 잘 닦여진 길이 보였다.


주변은 다시 어두워졌고 등도 보이지가 않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절은 어디 있지!

혼자 의아해하고 있는데 목영이가 나타났다.

"너 어디 있었니 한참을 찾았어"

"나도 너 한참 찾았어 계곡 물소리 때문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라"

"절이 있어서 보고 올라왔어"

"무슨 절?"

목영이가 의아해한다.

"여긴 절이 없어"

"이상하다 절 담벼락에 켜진 등을 보고 길을 찾았는데"

"신기하네 아무튼 더 가지 말고 텐트 치자"


겨우 텐트를 치고 자려는데 조금씩 스르르 미끄러진다.

아무래도 바닥이 평평한 곳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텐트 치고 잘 수 있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잠을 청하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시끄러운 물소리에 적막이 묻히며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서 화들짝 놀란 듯이 벌떡 일어나 앉아 둘러보았다.

아직도 어둑어둑한데 새벽같이 등산을 시작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올라가고 있어서 우리도 서둘러야지! 생각하며 텐트에서 나와보니 어젯밤에 친 텐트가 바로 길 옆에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더 모여들기 전에 얼른 짐을 챙기고 장비를 정비하면서 이런 곳에 텐트를 치다니 사람들이 볼까 창피했다.

지난밤의 어둠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판단을 흐리게 하고 엉뚱한 곳에 자리 잡게 하였나 보다.


저멀리 보이는 두타산 정상과 능선에 상고대(서리꽃)가 피어나면서 환상적인 설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 등산이라 험난했지만, 상고대를 보고 나니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덮인 바위와 나무들은 마치 동양화 속 한 장면처럼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차갑고 거친 바위를 손끝으로 느끼고 쓰다듬으며 하얀 나뭇가지 사이로 어슴프레 밝아오는 햇살이 비치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노라니 말로 할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차오른다.


어젯밤에 산이가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치 꿈을 꾼 듯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목영이는 또 저만치 앞서가서 보이지도 않는다.

한참 만에 산이와 목영이는 합류했지만 같이 등반하면서도 자기 속도로 가다 보니 만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다.


한참을 가다가 둘은 또 만났는데 목영이 옷이 다 젖어 있었다.

“얼른 갈아 입어 무슨 일이야”

길이 좁아서 그늘지고 얼어있는 바닥에서 미끄러지며 계곡 쪽으로 떨어지면서 눈 속에 푹 잠겼다가 피켈을 나무에 걸어서 잡고 겨우 빠져나와서 올라왔다고 한다.

피켈이 없었다면 어쩔뻔했나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부터 산이와 목영이는 둘이 같은 속도로 걸어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좁고 거친 산행로고 등산객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나으리란 판단에서였다.

"오늘은 프리산행은 안 하는 걸로"


걸어가면서 나뭇가지가 스쳐 눈이 툭 하고 떨어지며 햇살을 받아 부서지듯이 빛을 발하며 흩어진다.

눈을 한 움큼 잡아서 먹으니 시원하게 갈증이 가신다.

눈 덮인 길을 걷노라니 마치 이 세상의 길이 아닌 듯이 사라지고 나타나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유혹하고 있다.

내리막에서 배낭을 진 등을 뒤로 젖히고 무게로 중심을 잡고 엉덩이 썰매를 신나게 타본다.

좁을 길을 이리저리 발로 방향을 잡고 운전하다 보니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신이 난다.

"이 맛에 겨울산행을 하는 거지"

옛날에는 이런 산행이 가능하였지만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언제나 그 시절의 그 산이 그립다


두타산은 산이와 목영이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품어주고 있었다.

어젯밤에 담벼락을 보지 못했더라면 추위에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새삼 두타산의 보이지 않는 인정에 감사하게 되었다.

"산신님 어디 계신가요 한번 나타나주세요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부질없는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원시적이고 조용한 분위기를 간직한 산, 계곡과 숲은 얼기설기 걸친 나뭇가지가 인위적이지 않고 야성이 살아있는 멋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고,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의 강인한 기백과 눈 덮인 나무들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온몸에 느껴지며 주변은 세상의 소리를 흡수해 버린 듯이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맑은 계곡물, 웅장한 기암괴석, 깊은 숲과 신비로운 설경이 어우러졌던 두타산을 잊지 못하리라

그날의 그 절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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