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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Oct 28. 2021

너희는 주눅들지 않는 줄 알았어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지, 선생님이 미처 몰랐어.

  한 달 전쯤, 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 우리 학교 한국어학급 학생 3명이 출전했다. 그중 J가 동상으로 교육감 상을 타게 되었다.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는 같은 발표 내용을 한국어와 모어로 각각 말한 뒤, 질의응답도 마찬가지로 두 개의 언어로 번갈아가며 이루어지는 발표 대회이다. 다문화 학생의 이중언어 능력을 계발 및 독려하기 위해 시마다 실시하고 있다.)


  대회를 준비하느라 나도 아이들도 방과 후 시간과 주말을 할애해가며, 일찍 마치는 날마저도 늦게까지 남아가며 나름대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기특하고 고마웠다. 무엇보다 J의 어깨가 으쓱해진 모습이 좋았다.


  꽤나 규모가 큰 상이라 학교에서 방송으로 전체 시상을 하기로 했다. 한국어학급 학생이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다니,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대개 학교에서 상을 받을 일은 성적이 우수하거나, 전체 학년 또는 반에서 여러모로 우수한 학생이라 모범상을 받거나, 백일장 등 교내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한국어가 아직 능숙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은 상을 받을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인지라 더더욱 기뻤다. 상을 받는 J보다 신이 난 나는 J가 한국어 교실에 오자마자 한껏 부푼 마음을 잔뜩 묻힌 목소리로 말했다. "J야! 너 다음 주 수요일에 전교생 앞에서 상 받을 거야!! 너무 잘했어~! 우리 J 자랑스럽다~~ 멋져 멋져!!" J는 전체 시상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는 뚱한 얼굴을 한 채 갔다.



  다음날, J는 어쩐 일인지 여전히 그늘져 있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쌤, 저 상 안 받아요." "...? 안 받는다고? 전교생 앞에서 상 안 받겠다고?" "네." "어....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근데 왜?"


  이유를 들으니, 반 아이들 몇몇이 자신의 발음을 가지고 자꾸 놀린다고 한다. 그것도 한 3주 전부터. 자신이 상을 받으면 아이들이 분명히 또 놀릴 것 같다고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유였다.

  뜻밖의 이유라고 생각한 건, 우리 학교 한국어학급 학생들은 지금 너무나도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교과 선생님들께서도 우리 아이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시고, 아이들 성향이 애살 있고 착해서 너무 좋고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들은 터였다. 내가 봐도 그랬다. 항상 에너지 넘치고 귀염성 있게 까불락 거리는 아이들이었던지라 부산 소재 중학교의 어떤 다문화 학생들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J가 놀림받았다는 것보다 더 속상했던 건 내가 그걸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주로 놀리는지, 어떤 내용으로 언제부터 놀렸는지를 파악하고 그 아이를 혼쭐을 내주리라는 말로 J를 다독인 뒤 힘을 실어 상은받자고 했다. "네가 잘해서 상 받는 건데, 아이들이 놀린다고 왜 상을 안 받아? J가 능력 있어서 받은 거잖아, 아이들이 놀리는 거랑 전혀 상관도 없고, 오히려 놀리는 아이들이 잘못한 거지, 네가 기죽을 필요 없어. 그러니까 J야, 상 받자. 자신감 가져! 네가 잘한 건데 뭐. 걔들은 쌤이 혼내줄게. 우리 J 능력으로 받은 큰 상인데, 안 그래?"

  J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대강 듣던 2학년 A가 정확히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다 보니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또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불쑥 찾아왔다. 그 걱정을 최대한 숨긴 채 아이들한테 물어보았다. "혹시 너희는 너희 반에서 애들이 놀리거나 괴롭히는 애들 있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긴 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온전히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것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건넨 질문인지라.


  아이들 지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작년, 그러니까 아이들이 1학년일 때,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때에 겪었던 놀림과 비난의 모습으로 표출된 편견과 차별 경험이야기해주었다. 옛 역사를 언급하며 욕을 하며 러시아로 돌아가라고 하던 아이, 미숙한 한국어로 놀리던 아이, 이름으로 놀리던 아이 등 당시에는 아프고 속상했을 경험을 아이들은 다 하나씩은 안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 지난 일이라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행했더니 지금은 놀리던 친구들과 오히려 잘 지내게 되었다고도.

  힘들었을 순간을 순수히 자기 힘으로 잘 이겨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이 굳세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지면서도,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지만 내가 지나쳤을 작년의 순간순간들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최근에는 2학년 다문화 학생 무리가 학교 건물 뒤편에서 놀고 있었는데, 어떤 3학년이 "퍼킹 러시아, 러시아로 돌아가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올해 3학년은 제법 철이 든 학년이라 생각했기에 꽤나 충격적이었다. 1년 반 남짓 아이들을 봐 오면서 웬만큼 다 잘 지내고 있고, 우리 아이들만은 다문화 학생이라고 해서 주눅 들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오히려 더 활기차고 수면 위로 올라와 어깨 피고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내가 참 당차게 잘 키웠다고 감히 생각했었는데, 나 몰래 주눅 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늦게 알아차린 만큼,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어깨를 펼 수 있도록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서포트하는 것이 나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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