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새어 나온 내 못난 답답함이여
오늘은 조금 솔직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볼까 한다.
한국어학급을 담당하고 다문화 아이들을 만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묻는다면, 아마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소통'과 관련된 것들이다. 크게 학생과의 소통, 학부모님과의 소통, 선생님들과의 소통이 있는데 이 중 내가 가장 많이 해야 하지만 또한 가장 쉽지 않은 것이 '학생과의 소통'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면 굉장히 답답하다. 특히 최대한 쉬운 말로 천천히 이야기를 한 것 같음에도 소통에 있어 막 다른 길에 몰리면 김이 팍 샌다. 김이 새는 이유는 단순히 언어라는 장벽 때문일 때도, 그 외의 다른 것 때문일 때도 있다. 전자라면 금방 해결이 가능하지만 후자일 경우 답답함과 함께 막막함이 밀려온다. 1년 반이 넘도록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비슷한 상황을 수없이 겪었으면 이제 조금은 넓은 가슴을 가질 법도 한데, 안타깝게도 아직 그렇지 못하다. 때로는 답답함을 넘어 짜증이 살살 고개를 내밀 때도 있다. 문제는 나도 완벽하지 못한 사람인지라 그런 내 감정이 제대로 숨지 못하고 새어 나올 때가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는데 이제 더 이상 어떻게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선생님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하고 있는데….", '아, 이걸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하아, 진 빠진다', "아니, 그게 아니고…"
A는 그런 내 감정을 가장 많이 느꼈을 아이이다. 중학교 3학년인 A는 2년 전 내가 일반 학급을 맡았을 때 우리 반 아이였다. 1학년 때 얼핏 본 A는 총명하고 학습에 대한 집념도 꽤 있으며 성실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한국에 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 출발은 느리지만, 차근히 과정을 밟아나가면 금방 성장할 것만 같은 아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했다. A를 떠올리면 하얀 웃음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수줍음이 많아 먼저 다가가지는 못했어도 선한 성격 덕에 아이들과도 드문드문 곧잘 지내는 듯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쭉 자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내 전달 사항과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눈에 보여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특별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어학급을 담당하게 되면서 아이들과 밀착하여 지내게 되었으니 안 보이는 부분이 보여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때때로 A는 내게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야기를 할 때 가만히 서 있지 않고 돌아다닌다거나 정신없는 행동을 하는 모습, 수업을 하다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 얘기를 하다 말고 대뜸 엎드려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는 모습, 무언가를 물었을 때 빙글빙글 돌려서 대답하는 모습, 꾸중을 듣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 농담을 하고 웃는 모습 등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모습이 학기가 지날수록 심해졌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상담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 상담을 부탁드리고 필요한 검사도 의뢰해보았다. 딱히 문제랄 것이 드러나지 않아 외부 상담 센터에 연계하여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해보았다. 이중언어 선생님께 부탁드려 학부모님과의 상담도 진행해 보았지만 소통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내가 잘못짚은 것일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A는 지금도 여전히 내 걱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혹시 단순 사춘기는 아닐까, 표출하고 싶은 것이 많을 시기인데 상황 상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여 무언가가 쌓여있는 건 아닐까 싶어 이래저래 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A는 수줍게 웃기만 할 뿐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A의 나중을 위해 A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면서 졸업 전에 최대한 바꿔주어야 하나 싶어 그런 방향도 시도해 보았지만 찜찜함만 남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나이라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인데 내가 문제 행동 렌즈를 낀 탓인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가만 생각해보면 딱히 문제 될 행동이 아닌데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으면 다 규제하고 막아야 할 것만 같은 습관이 생기긴 한다.) 어쩌면 내 마음이 이미 답을 내려놓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것. 그렇다면 내가 문제인 것이니 차라리 다행이지만,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데 탁월한 방법도 모르겠고 1년 간 수확이 없으니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과 답답함이 동시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버렸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A의 행동이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A야, 너는 나중에 무슨 직업을 갖고 싶어?" 아이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윈도우 XP와 윈도우 10에 대해서 내게 묻는다. 다시 질문을 이야기해주지만 아이는 웃으며 알쏭달쏭한 대답만 내민다. 이런 상황이 10여분 간 지속되면 밖으로는 꺼낼 수 없는 질문,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가 피어오른다. 하지만 질문만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 삼킴에 서투른 내 표정과 말투는 답답함을 뱉어내고 만다. 부드러웠던 말투는 약간 날을 세우려 하고, 아이의 대답을 능숙하게 넘길 여유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대신 대답을 재촉하는 건조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아이를 제대로 돕지 못했다는 부채감 때문에 괜히 스스로에게 심술이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A에게 너무나 미안해진다. 대부분의 일에는 이유가 있는지라 A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분명 있을 터인데. 최소한 우리 학교에서만큼은 A를 가장 많이 이해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것이 쉽지 않음에 오늘도 A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조급함이 A에 대한 이해를 더 가로막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할 일은 A를 바꾸는 것이 아닌, A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A를 더 알아가며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는 것이 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정신이 없어 교무실에 두고 온 펜 태블릿을 혹시 가져다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을 때, A는 재빨리 가져온 것도 모자라 이렇게 내 노트북에 연결해놓고 간 아이다. A야, 오늘도 답답해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