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란?
어김없이 찾아온 수행평가 시즌. 우리 아이들이 수행평가'라도' 신경 써서 임할 수 있도록 잔소리하는 것도 한국어학급 담임교사인 내가 해야 할 몫이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수행평가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나조차도 확신이 없어, 제발 열심히 좀 해보라고 부르짖는 말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마구 쏘아대는 잔소리 뒤에는 언젠가부터 '왜 열심히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따라붙었고, 그 질문을 누를 만한 타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교사인 나에게는 수행평가는 당연히 성실히 임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 중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 진학에 딱히 뜻이 없는 아이들, 고등학교는 커녕 자신이 한국에 왜 왔는지조차 몰라 당장의 목표도 없이 무기력한 아이들, 한국어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도 충분치 않아 몸부림치는 아이들이 다수였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한국 공교육 평가 체제에 당연히 적응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자문하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2년 즈음 지나자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수행평가를 신경 썼을 때의 이점이 분명히 있고, 그러니 신경 쓰게끔 하는 편이 낫겠다는 나름의 답! 성취감과 동기 부여 같은 아름다운 이유도 있겠으나, 비중이 큰,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부터 써 보고자 한다.
우선, 고등학교 진학에 발목이 잡히지 않기 위함이다. 1~2학년 때에 "고등학교는 저한테 필요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던 아이도 한국의 교육 체제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무엇보다 학부모님께서 고등학교 진학을 원하시는 경우가 많고,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중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으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서글픈 상황이 많이 펼쳐질 것임을 이야기하면 고등학교 진학까지는 대부분 설득이 되는 편이다.
문제는 아이가 80층에 있는가, 90층에 있는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고등학교의 개수가 달라진다는 점. 만일 손을 놓은 채 3년을 보내다 전교 꼴찌 또는 이웃 자리를 차지한다면, 우리 아이는 아주 인기가 없는 학교라든가, 어느 누구나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거름망 없이 활짝 열려있는 학교라든가, 또는 학력 인정 학교에 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열한 학교들이 나쁜 학교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 학생에게 견고한 울타리가 되어줄 확률은 낮은 학교라고 생각되기에 가급적 권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면 한국어학급은커녕 꾸준히 잔소리를 하며 한국에서 무사히 생존할 수 있도록 잔소리해 줄 누군가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고등학교 체제에서 한국어가 부족하면 어떻게든 붙잡아두며 한국어를 알려 주려고 하고, 필요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건네줄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실까. 아마 많은 중학교에서도 그러하듯, 다문화 학생을 생소해하시며 당황하시는 경우가 많을 터. 게다가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니 중학교에서처럼 학생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약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어설픈 한국어 실력으로 원치도 않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흥미도 의욕도 의지도 뚝뚝, 하루 이틀 시작된 결석은 일주일을 채우고, 한 달이 되고, 결국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래서 최대한 자신이 관심이 있고 잘할 수 있을 만한 분야의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끔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성적이 최소한의 조건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교사의 잔소리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요즘엔 지필평가보다 수행평가가 힘이 세기 때문에 수행평가를 나름대로 신경 써서 했을 때에 받는 성적과 내팽개쳤을 때에 받는 성적은 아무래도 다르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필평가는 영 어려울 수 있더라도, 수행평가는 성실함만 갖춰져 있다면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항목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볼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게 수행평가라도 신경 써야 할 가장 현실적인,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교과 선생님과의 관계 형성과 이미지 향상을 위해서이다. 며칠 전에 3학년 영어 교과 선생님께서 격앙된 표정으로 내게 오셨다. "선생님, K가 영어를 엄~청 잘하던데요?!" 나는 K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영어 실력을 발휘할 의지가 없어 엎드려 잘 뿐. 매일 엎드려 잠만 자는 학생이니, 영어 선생님께서는 K가 영어를 잘하는지 관심은 있는 건지 아실 수가 없다. 하지만 수행평가 시간에는 잘 수가 없으니 K는 '어쩔 수 없이' 시험에 임했는데, 외국인이기에 지닌 특유의 잘 굴러가는 발음과 기존에 갖추고 있던 영어 실력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영어 말하기 수행평가를 꽤나 잘 한 모양이었다. 영어 선생님께서는 K가 영어 천재였다며, 발음도 확실히 다르다며, 아이를 다시 보았다고 하시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이처럼 다문화 학생이 무언가를 해냈을 때에 비로소 교과 선생님들께서는 '이 아이도 뭔가를 잘하는구나!'라고 인지하신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는 또롱또롱한 아이도 교과 시간에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가 대부분이니, 많은 교과 선생님들의 눈에 다문화 학생은 '뭔가를 잘 못하는 아이', '부족한 아이', '할 수 없는 아이'로 인식되기 일쑤이다.
어쩌다 운 좋게 기회가 닿아 아이의 능력을 인지하고, 아이를 다시 보시게 된 선생님께서는 종종 칭찬도 해 주시고, 자고 있을 때에 한 번 더 깨워주시고, 너도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고 애정 어린 잔소리도 해주시고, 어려워할 때면 조금이라도 해보자고 독려하시고, 기대도 표해주시곤 하는데 그것이 차곡차곡 쌓이면 긍정적인 작용이 일어난다. 아이도 그 교과 선생님께서 자신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음을 점차 느끼기에 조금이라도 덜 자려고, 뭐라도 해보려고 꿈틀대다가 어제보다 더 나은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기대를 걸고 지켜보는 교사가 한 명 더 생긴다는 건 여타 아이들에게도 그렇듯 우리 아이들에게도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 또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는 세 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마지막 이유, 작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성취감이다. 슬프게도 우리 학교에서 다문화 학생은 한국어 수업 외 교과 시간에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게 되는 경험과 기회가 적다. 오히려 학교 생활을 해 나가면서 젖어들게 되는 무기력함에 스스로조차 '나는 교과 수업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라고 생각해 버리는데, 교과 수업 시간에 쉬운 일이라도 무언가를 해내고 나면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이 조금은 채워지는가 보다. 칭찬받고 싶은 얼굴과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선생님, 보세요. 저 오늘 미술 시간에 이거 했어요."라며 종종 내게 말해주는 걸 보면. 이것이 수행평가가 아이에게 안겨 줄지도 모르는 성취감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국어학급 아이들이 수행평가'라도' 최선을 다하기를, 성적에 무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