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읓 May 05. 2023

카무이에게 바치는 공물 (10)

아이누의 정령신앙 

의례복에 이어, 아이누의 믿음과 정신세계에는 카무이(kamuy, カムイ)가 빠질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어의 카미(神/신)와도 유사한 개념인 카무이는 종종 신(神)으로 번역되나, 정령의 개념에 더 가깝다. 


불, 물, 바람, 혹은 도구 같은 무생물에도 깃들어 있고 동식물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다. 카무이란 거의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존재인 것이며, 아이누는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것과 인간이 은혜를 받는 것들 모두 카무이로써 존경해 왔다. 곰이나 여우, 담비 같은 수렵의 대상은 단순히 동물로써 여겨지는 것이 아닌 카무이가 고기와 모피를 주기 위해 인간 세계에 나타난 형상이라고 믿었다. 


카무이는 신들의 세계인 카무이 모시리(kamuy mosir)에서 살아간다. 카무이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고기나 모피 등을 가지고 인간계인 아이누 모시리(aynu mosir)에 온다. 그러면 아이누는 예를 갖춰 그 카무이의 영혼을 대접하고 다시 카무이의 세계로 보낸다. 그리고 신의 세계로 가면 인간의 모습으로 여느 인간들과 같이 옷을 입고 인간들과 같은 집에서 살아간다고 여겼다. 


일종의 정령신앙과도 같은 카무이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또한 기독교나 불교의 세계관에서 나타나는 신적 존재와 달리, 아이누에게 있어서 카무이는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해 왔다. 

카무이에게 바치는 공물 이나우(inaw, イナゥ)와 의례도구 이쿠파스이(ikupasuy イクパスィ)

아이누의 제례도구는 독특한 모양인데, 그중 가장 빠지지 않는 도구가 있다면 이 둘이 되지 않을까. 첫 번째는 신께 바치는 공물인 이나우(inaw, イナゥ)이다. 아이누 사람들은 이것을 카무이에게 기도할 때 신의 세계로 보내는 공물로써 바친다. 


나무 막대기의 껍질을 벗기고 말린 뒤, 마키리로 얇게 깎아 술처럼 길게 늘어뜨려 만든다. 바치는 카무이에 따라 이나우의 형태는 달라진다. (이나우의 형태에 따라 이나우의 성별이 정해지고, 이 공물을 받는 카무이와 반대되는 성별의 이나우를 바친다.) 이나우는 신의 세계인 카무이 모시리(kamuy mosir)와 인간계인 아이누 모시리(aynu mosir)를 잇는 매개체의 역할이 되겠다. 


곰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는 의례인 이오만테(iomante, イオマンテ 혹은 이요만테)나 새 집을 지은 것을 축하하는 의례인 치세노미(cisenomi, チセノミ) 같은 큰 의식에는, 대량의 이나우를 바쳐야 하기 때문에 대강 일주일 전부터 의례에 사용할 나무를 준비한다. 나무를 자를 때는 "카무이노미(신께 드리는 기도)를 위해 이나우를 만들 나무를 가져가오니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자연에게서 양해를 구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아이누 사람들의 생활관을 엿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의례에 빠뜨릴 수 없는 도구인 이쿠파스이(ikupasuy, イクパスィ)이다. 지역에 따라 투키파스이(tukipasuy, トゥキパスィ)라고도 불린다. 카무이나 조상에게 술을 바칠 때 쓰이는 나무로 만든 제구(祭具)로, 이나우와 같이 카무이와 인간을 잇는 매개체인 셈이다. 

카무이에게 술을 바칠 때 쓰는 이쿠파스이(또는 투키파스이)

모습은 얇고 평평한 나무 막대에 한쪽 끝은 뾰족하게 되어 있다. 표면을 문양으로 꽉 채웠지만 차분하고 화려하게 생겼다. 의례를 치를 때는 왼손으로 술잔을 들고 먼저 기원사를 읊는다. 그리고 그 다음 이쿠파스이의 끝부분을 술에 담구고, 한두 방울을 불이나 이나우에 뿌려 공물로써 바친다. 한 방울의 술은 신의 세계에 닿았을 때 몇 배로 불어난다고 믿었다. 


아이누 민족과 화인은 서로 교역을 하면서 언어적 교류도 많이 있었는데, 나는 파스이 역시 일본어의 젓가락을 가리키는 단어 하시(はし, 箸)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을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답사를 떠나기 전까지 이쿠파스이 역시 젓가락처럼 두 개가 한 쌍인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이쿠파스이는 생각했던 모습과 달리 평평한 나무 막대의 모양이었다.  

아이누의 젓가락 이페파스이. 길고 두껍다.

아이누어에서 젓가락을 가리키는 단어는 "이페파스이(ipepasuy, イペパスィ)"였고, 숟가락은 "페라파스이(perapasuy, ペラパスィ)"였다. 파스이란 의미는 젓가락보단 그냥 식기도구에 가까운 단어였다. 그럼 위 두 단어를 직역하면 각각 "밥 먹는 도구", "주걱 도구" 따위가 되지 않을까. 




2023.04.05 가다 

2023.04.19 쓰다

이전 09화 우포포이, 민족공생공원 (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