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가기 전에 글 하나는 꼭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켰다. 어떤 의지, 다짐 같은 것인데, 그보다, ‘쓰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를 대자면 4월 초부터 일을 다니느라 힘들었다. 퇴근은 6시. 나만의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퇴근 후 집에서 글을 쓸 힘이 나지 않았다. 오늘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내일이 쉬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5월 31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이 5월이 아니라 6월이기 때문일 것이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름이 진정한 사랑의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진짜에 가까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계절 말이다. 가을은 외로움이 너무 증폭되어 조급해서, 겨울은 너무 추워 옆구리가 시려서, 봄에는 봄을 너무 타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름은 해도 가장 길고, 사계절 중 내가 가장 그나마 덜 우울한 계절이다. 그러니까 가장 진솔하고 나 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계절인 것이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만나면 좋을 텐데.
문득, 내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 말고,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내가 좋아지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좋아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그것을 균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되돌려 놓으려고 한다. 마치 변하면 내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그 작은 균열이 결국은 나를 파괴할 것만 같은 생각에. 물론 사라진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린 말이다. 사실은 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기에. 그러면서도 원래의 내가 사라지는 것은 맞는 거다. 어쨌거나 나는 그토록 미워서 죽이고 싶기까지 했던 내가 진짜로 죽어버릴까 봐 몹시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힘든 삶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그렇게 나아지려고 애쓰면서 계속 살아간다. 나아지는 것을 선택하면 되는데.
누구든 그 두려움만 깰 수 있다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 두려움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한 끝 차이다. 손을 놓는 것. 그리하여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죽을 지라도, 그럴 각오를 하고 뛰어드는 것.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망치는 건 참 쉽다. 그래서 늘 망치는 걸 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 오랜 시간 고생해서 쌓아 올린 멋진 모래성과 즐겁게 만들어 놓은 예쁜 눈사람을 발로 차고 밟아서 망가뜨리는 심술쟁이 아이처럼. 그런 일은 쉬운 일이다. 아, 얼마나 쉬운 일인가.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일(소명)’인 양.
누군가는 끊임없이 예쁘고 아름다운 모래성을 열심히 쌓아 올리고, 누군가는 그 모래성을 끊임없이 짓밟는다. 과연 신이 있다면 모래성을 짓밟는 것과 같은 일을 누군가의 소명으로써 부여했을까? 그런 신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하면 안 되는 일을 쉽고 아무렇지 않게 한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힘들어질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재미로, 욕심으로.
어리석다. 그 죄가 너무 깊고 넘쳐나서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어리석다. 그래서 계속 윤회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인간 세상을 졸업하기 전까지. 이번 생에 저질렀던 잘못을 다음 생에 갚기 위해. 이번 생에 다 이루지 못한 것을 다음 생에 이루기 위해. 다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고…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내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뭐, 살면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거나 경험하면서 바뀔 수도 있지만.
내가 지향하는 삶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손을 놓는 것. 뛰어드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이 생이 끝나기 전에. 아니, 할 수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아니,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