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받은 성격
어떤 순간이었을까. 그들을 변하게 만든 순간은.
반복되는 수많은 순간들이 모이고 커져서 그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어땠을까.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을까,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을까. 그를 지금 이렇게 만든 것에 어떤 순간이 주를 이루었을까. 그 자신과 타인들도 그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처음엔 아주 서서히 변해갔을 것이다. 그러다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변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자신조차도.
나는 진짜 자기를 마주하기를 겁내 왔던 것 같다. 별 볼일 아닌 사람일까 봐. 의무감 때문이더라도 강요받은 성격으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던 건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것은 내 성격의 원인을 다른 것들로 돌릴 수 있었기에.
문득 강요받은 성격으로 사는 사람들의 설움과 억울함이 느껴졌다. 우리 엄마. 엄마의 서러움.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만든 규칙과 틀이었지만 엄마는 한사코 그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 탓을 많이 했다. 당신 때문에. 너 때문에. 누구 때문에. 엄마가 소리 지르고 화내고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 까닭은… 어쩌면 그저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강해져야 했기에.
엄마는 나 때문에 얼마나 더 강해져야 했을까. 엄마의 서러웠던 순간들 중에 나에 대한 기억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얼마 정도를 보탠 걸까. 이러한 자책은 아무 위안도 되지 못하겠지만. 그동안 혼자 그 짐을 어떻게 다 짊어지셨나, 마음이 아프다. 나는 지금 오롯이 나의 존재를 책임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벅찬데. 엄마는 다른 식구들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진작에 부모님을 용서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다친 설움까지 다 아물지는 않았지만. 불쑥불쑥 나를 괴롭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그것은 천천히 치료해 나가 보자. 나와 맺은 동맹은 아주 견고하고 단단하다. 꾸준히 말해줘야지.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그리고 다 괜찮다는 걸.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