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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효선 Jan 27. 2022

항해 중

삶은 여행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물끄러미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떤 모양으로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일렁이는 파도를 헤치며 홀로 항해하는 나의 모습이 상상됐다. 나는 항해 중이다. 나는 연약하지만 결코 침몰하지 않는 작은 배의 선장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 내 손으로 노를 저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방향키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항해를, 여행을 오롯이 즐기고 있다. 파도라는 녀석은 맞서 저항하면 무시무시한 적이 되지만 몸을 맡기면 즐거운 놀이기구가 된다. 왜 그런 여유를 진작 갖지 못했을까. 많은 시간 동안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한쪽 구석탱이에서 두려움에 떨며 무기력하게 보냈다. 

학습된 무기력은 생각보다 무섭고 강한 질병이다. 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커다란 힘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심지어는 삶의 기쁨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원할 수조차 없다. 

내 존재를 알고 타인이 자신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의무다. 그 의무를 모른 척하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믿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라며 자포자기한 채로 정처 없이 같은 자리를 떠돌거나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일관적인 믿음과 지지를 보내는 일은 그를 변화시키거나 깨닫게 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문제다. 스스로 깨닫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나 또한 내 존재를 알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나를 만날 수 있었고 나만의 방향키를 만들어 그것을 내 두 손으로 붙잡고 비로소 내가 정한 방향으로 항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 얼마나 평안한 마음을 주는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은 삶을 얼마나 즐겁게 만드는지. 희망이 있는 삶이란. 

모든 행운과 불운에 맞서고 사소하지만 하나하나 스스로 꾸려가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소소한 행복은 곳곳에 있었다. 전에는 왜 보지 못했을까. 너무 크고 휘황찬란한 것들만 찾아 헤맨 것 같다.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좋은 결과에 대한 보장 없이도 시도는 언제나 가치 있다는 것, 뭔가를 하기로 결정하고 출발하기 직전의 두려움이 결코 전부가 아니며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마주하더라도 그 과정이 헛된 것이 아님을. 이런 것들을 통해 나는 점점 더 용기 있어진다. 나 같은 겁쟁이도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에 감사하다. 결코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먼저 포기하고 노 젓는 것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좀 더 많이 웃으며 재밌게 항해하고 싶다. 

인생은 여행, 나이를 많이 먹어도 기대감과 호기심을 간직한 채로 되도록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상대의 마음에 가 닿고, 연결감을 느끼고, 응원하고, 기도하고, 도움을 주고, 웃게 만들고… 그 모든 것은 똑같이 내가 누군가에게 받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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