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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Nov 14. 2019

102호에서 우리는

작지만 큰 세계

                                                

 신혼집은 어디야? 몇 평이고?

 

 결혼 소식을 전하자, 회사 사람들이 우르르 내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축하해’란 말이 가장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첫 마디가 신혼집, 몇 평이라니.

 항상 나의 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천에 있는 사원임대아파트요”라고 대답하자 난리가 났다. 거기에선 행실을 똑바로 해야 한다, 소문 조심해라, 아파트가 엄청 낡았다더라, 우린 시댁에서 무슨 아파트 해줬는데, 누구는 결혼할 때 얼마 받았다더라 까지.

 말 한마디로 ‘이 결혼 무효일세 청문회’까지 열렸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열기를 더한 주제는 혼인신고였다. 아파트를 미리 신청하려면, 결혼하기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는 사실. ‘혼인신고는 자고로 미리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모두의 공통 조언이 있었다.




 나와 남편은 양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시작하자는 큰 포부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른, 사원 아파트가 아니면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 년 동안 지낼 수 있는 특급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말았다. 그 신고를 하자니 떨리고, 자유로운 인생이 끝나는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남편이 월차를 낼 수가 없어 혼자 왔고, 신청 접수대 위에는 강력한 문구가 붙어 있었다.

 [접수 후 취소가 불가능] 취소가 불가능한 신고를 하고 미리 유부녀가 되었다.



 친구는 “웰컴 투 유부 월드”라며 아가씨에서 진정한 아줌마가 된 것을 축하했다. 같이 남편, 시댁 이야기도 하잔다. 직접 경험해 보아야 아는 것들, 그 세계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들이 너무 많다. 내 결혼을 걱정(이라 하고 참견이라 한다)하는 직장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혼인신고 안 해도 신청할 방법을 찾았노라고, 거짓말을 하면 표정이 어색해지는 통에 아마 눈치를 챘을 수도 있을 거다. 결혼 반대 여론은 잠잠해졌으나 ‘시집 잘 못 가네’라는 눈빛은 여전했다.

 아무 상관 없었다. 우리 둘 잘 살면 되지.


 

 남편 직장과 사원임대아파트 때문에, 연고지 없는 이천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시멘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5층짜리 아파트를 처음 봤을 때 ‘생각보다는 괜찮은데?’라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살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흠칫 놀랐다. 여기저기 뜯어진 벽지는 뽀로로(애니메이션 캐릭터) 무늬였고, 낙서와 시커먼 곰팡이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체리 색의 부엌 찬장은 어떤 시트지라도 당장 붙이고 싶어 졌다.

 남편은 연신“괜찮겠어?”라며 곁눈질을 하기 바빴다. 아파트 살 돈이 없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처럼 다가온 집이라 그랬을까.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 우리 둘이 살기에 딱 이야!”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여기서 둘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막상 와보니, 행실을 똑바로 하라던가 소문이 빠르다는 주변의 조언은 전혀 걱정할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날 모르고, 서로 누가 사는지도 관심 없었다. 이 세계로 오기 전까지 왜 이리 절차는 많고 조언은 넘치는지, 거기에 지쳐서 결혼 시작과 동시에 병이 날 것 같았다.

  


 그 집은 둘이 사랑하는 술을 밤마다 같이 먹는 호프집이 되었다가, 음악을 디제잉하고 춤을 추는 클럽으로 변신했다.

 시댁 문제나 서로 때문에 울고 화냈던 치열한 싸움장으로도, 밤에 들리는 옆집 싸움에 관해 누구 잘못인가로 논쟁이 붙었던 우리의 역사와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었다.

 동네 친구도 아이도 없던 나에게, 남편을 기다리는 설렘과 동시에 외로움을 알게 된 곳. 못하는 요리를 내놓으며 생색내던 내 모습이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얼마나 작고, 낡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첫날. 몸과 마음이 온전하지 못할 때 우리의 세계가 좁게 느껴졌다. 식구 한 명이 더 늘었다. 어마어마한 육아용품과 아기침대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한순간에 숨 막힐 듯 답답했다. 구석에 먼지라도 있나 의심하는 내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우리가 같이 앉아 술 먹으며 영화를 봤던 검은색 소파는, 새벽에 혼자 아기를 수유하는 어둠의 자리가 되었다. 작았지만 둘이서 보내기엔 편했던 거실은, 아기 매트로 다 깔려 어디에도 우리의 공간은 없었다.

 


 여리고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 줘야 했다. 하다못해 우리가 쪽잠을 자더라도 말이다. 당연해야만 하는 일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는지, 우리의 관계는 서서히 변화를 몰고 왔다. 서로 대화가 끊기지 않던 집에서 조금씩 말소리는 사라졌다. 둘이 살기 딱 좋았던 크기였지만, 아기 놀기에 좁다는 생각에 자꾸 밖으로만 나갔다.

 둘만의 세계가 철저히 아이 중심으로 변해가는 현실이,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말라가게 한 것이다. 그 여유를 다시 찾아오는 것도 둘의 몫이라 생각한다.




 신혼 3년 차, 아이 돌잔치를 끝낸 4월에 잔디가 깔린 이층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집이 지어지는 모습부터 살폈으니, 애착이 스며든 우리의 새집.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다가도 웃기고 설레는 역사가 차곡차곡 쌓이지만, 신혼집에서의 우리 이야기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어느 날, 남편 회사에서 전 직원에게 김치를 보낸다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택배가 안 오길래 알아보니, 실수로 예전 주소에 발송했단다. 다시 보내 드리겠다는 전화가 끝나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그 아파트 다시 가 볼까?” 그랬더니 귀찮다는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살던 102호에 어떤 가족이 살까? 오지랖이지만 괜히 행복을 빌고 싶은 날이다. 지금 여기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우리의 행복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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