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실패하자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딱 10분만 운동해야지.
점심시간엔 딱 열 페이지만 책 읽어야지.
퇴근하면서 친환경 마트에 들러 장 보고 와야지.
큰 아이 숙제는 30분, 작은 아이 놀이는 한 시간만 해야지.
밀린 서평은 아이들 재우고 써야지.
모임방에 올린 안내문은 점심시간에 써야지.
잠들기 전 세우는 내일의 계획은 언제나 달콤하다. 자주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마음이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계획은 늘 의욕적으로 세우게 되니까.
자기 전에 세운 계획이 무색하게 어느 날에는 맞춰둔 알람보다 늦게 일어나 운동은커녕 머리도 못 감고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엔 갑자기 도시락 회의가 잡혀 꼼짝없이 붙잡혔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 무렵엔 녹초가 돼서 장 보러 갈 마음은 사라지고 배달앱을 켰다.
예전에는 지난밤 세운 계획이 하나씩 어그러질 때마다 조바심이 났다.
‘또 못 지켰네. 아, 정말.’ 괜히 아이들에게 탓을 돌리고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면서 조바심 난 마음을 회피하려고만 했다.
‘계획대로 딱딱 이루어진 하루였다면 그렇지 못한 하루보다 불행했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은 '아니'였다. 도시락 먹으면서 회의를 한 덕분에 정시에 퇴근할 수 있었고, 배달앱으로 주문한 덕에 음식 할 시간에 작은 책을 한 권 더 읽어줄 수 있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날을 마무리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계획대로 딱딱 맞춰 사는 일은 분명 보람되고 뿌듯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하루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출처 : 픽사베이계획을 세우는 일은 또 하나의 실패를 대비하는 일 같다. 오늘의 실패 속에서 하나의 성공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섯 개의 계획 중 네 가지는 실패했지만 하나를 성공했을 맛볼 수 있는 최대한의 기쁨을 자주 누리려고 노력한다. 시작하기도 전에 어떤 일은 결국 실패할 거란 걸 예상한다. 그럼에도 뚜벅뚜벅 그 실패를 향해 걸어가고 싶다. 살아가는 동안 내내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진정으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성공의 노하우가 아니라 실패의 노하우다. 성공의 노하우는 남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고 어차피 두 번 이상은 통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실패의 노하우'는 오직 나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삶의 처절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실패의 노하우는 내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오기'가 아니라 '실패하고도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언제든지 패배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싸움을 두려워하는 비굴한 관찰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패배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싸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니까. 실패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꿈꾸는 더 나은 나, 내가 살아가고 싶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 『마흔에 관하여』, 정여울, 한겨레출판
‘부캐’ 활동을 할 때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순간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만큼 회원들이 열심히 해주지 않을 때도 있었고, 목요일 그녀의 이름이 정체된 듯한 느낌에 그냥 그만할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때 멈췄다면 지금의 ‘목요일 그녀’를 만나지 못했을 거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제야 나도 ‘실패의 노하우’가 알려주는 ‘실패하고도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 것 같다.
마흔을 앞두고 두려웠던 건 늙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이십 대의 젊음, 30대의 안정적인 시간이 지나자 중년이라는 문 앞에 덜컥 도착한 느낌이 들었다. 마흔의 삶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막상 도착한 마흔은 생각보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당황했다. 스무 살의 나도, 서른 살의 나도 자주 실패했다. 모든 일이 내 마음과 다르게 일어날 때도 많았다. 내가 스스로 계획하고 실패한 시간들이 없다면 여전히 알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에도, 내일의 실패를 위해 또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