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요 Oct 16. 2020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은 8개월까지만

10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실업률, 그 수치에 일조하고 있는 나. 부모님 호강은 뒷전이 된 것 같고, 마음이 불편한 채로 무언가 사부작거리며 만들어낸다. 그러다 가끔 들리는 엄마 친구 딸에 대한 소식. 이럴 때면 자존감이 확 낮아진다. 나는 사회에서도 집에서도 루저인 걸까? 생각이 물꼬를 트면 걷잡을 수 없는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머릿속이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내 손은 이미 초록색 검색창에 ‘신규채용 공고’를 검색하고 있다. 

    

  퇴사 후 9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당연히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고정수입 따윈 없다. 올해 닥친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가 힘들다. 이 와중에 나는 작년 12월, 펜데믹이 오기 직전에 퇴사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 득인지 독인지 판단되지 않았다. 

    

  일하던 곳은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바로 영향을 받아 많은 직원이 유급 휴가를 받아 떠났다. 이 소식은 전 직장 동료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다. 굳이 떠난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을까? 많이 힘들던 시기에는 그런 말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냥 무관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울기도 하고 머리채를 쥐어보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신음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생체 리듬과 호르몬 영향에 따라 힘들기도 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예상외로 잘 지낸다는 것을. 나의 비관은 호르몬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사실이었다. 몸이 힘들 때 비관적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인생 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흔들린다. 그때 크게 한 번 울어야 이 혼란스러운 감정이 잠잠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기복이 줄어들었다. 아주 좋음과 몹시 나쁨의 감정을 격렬하게 겪고 난 후에야 감정의 높고 낮음에 대한 면역도 생겼다. 실컷 아파 울고, 기분이 좋을 때는 웃었다. 더 우울한 기간임을 깨닫고 감정을 자유롭게 해주는 게 묘책이었다. 그간 참아온 올가미를 벗어나 하늘을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감정에 솔직해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어떤 역할에 빠져 진짜 나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슬프면 참고 기뻐도 참았다. 너무 과하면 이상하게 보일까 싶어 남들만큼 의젓하게 지내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 크고 나니 겉만 어른이 되었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의 감정에 갇혀서 떼쓰고 소리 지르고 싶은데, 그 감정을 가둬놨다. 나보다 더 힘든 부모님이 있는데, 나한테 기대를 거는 주변 사람들이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터널 같은 순간들이 지나고 보니 울고 싶을 때 실컷 울던 그 시간이 얼마나 용기 있었는지, 소중한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 남 눈치 보고 사느라 내 눈치는 안 보던 시절을 벗어나 나답게 시작하는 이 순간.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라는 말이 또다시 떠오른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나를 믿고 내 길을 가보자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이전 09화 학창 시절의 로망 수채화, 다 커서 해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