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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Mar 24. 2022

회의 때마다 안부를 묻는 상사

How are you?

How are you? 는 그냥 인사다

잘 지내고 있니 라는 안부인사가 아니라는 건 영어회화 유튜브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How are you? 하면 주입식 영어의 대답만 생각난다.

'fine. thank you. and you?'

처음에는 주간 회의를 할 때마다 How are you?라고 물어오니 영어권에 익숙은커녕 잘 알지도 못하는 나는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아 내가 잘 지냈던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한 일주일이 생각나기도 하고 업무적으로는 잘하지 않았나? 그러나 '개인의 삶이 힘들었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저 형식적인 인사일 뿐인데 'good'이라는 한마디가 안 나오는 나였다. 영어 교육의 현주소를 고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요즘의 영어교육을 받은 분들은 이 정도 수준은 아닐 테니까.


영어를 못해서 문제?

문득 이건 영어를 못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게 된 것도 다른 생각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왜 그저 'good'이라는 대답도 못하고 있을까? 물론 그냥 그럭저럭 이면 I'm OK라고 하기도 하고. 좀 나아진 기분이면 better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꾸만 꺼려지던 대답 good은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good은 정말 엄청나게 좋은 기분일 때 가끔 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은 매일 아침, 아침 인사한답시고 good morning이라고 하지 않나? 정말 매일 아침이 좋은 날은 아닐 텐데. good이란 단어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는 나를 보며 웃기기도 했다.


Good이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가 완벽히 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완벽히 슬프지도 않다. 하루의 모든 순간을 분류해보면 좋은 순간 + 슬픈 순간 + 뭐라 말할 수 없는 순간 정도 아닐까? 나는 여태껏 슬픈 순간이 0인 하루를 좋은 하루라고 정의해 왔다. 그래서 좋은 하루는 거의 없었던 슬픈 인생이었다. Good이라고 대답한 이유는 좋은 순간이 0이 아닌 하루는 좋은 하루라는 생각으로 바뀐 결과물이다.

좋은 순간은 거의 매일 있다. 심지어 거의 매시간 있을 때도 있다. 좋은 커피의 향이 위로해준 순간, 기분 좋은 햇볕을 느낀 순간, 아내의 애교에 웃었던 순간, 딸내미의 귀여운 얼굴을 보는 느낌, 아들내미의 장난스러움에 웃음이 터진 순간이 매일 존재하기에 그 하루하루를 Good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 순간이 분명히 포함된 하루를 슬픈 하루로 만들고 싶지 않다.

슬픈 순간이 존재했기 때문에 우울할 거라면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없다. Good에 대한 비현실적인 완벽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 실존적 의미부여의 기쁨을 누리기로 했다. 매번 인사를 해준 상사에게 나의 하루의 가치를 물어봐주기에 고맙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그에게도 묻는다.


'Good! Thank you. How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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