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

보고 싶은 친구

by 포포

근만이는 나보다 두 살 위인 친구다. 근만이 동생 근천이도 내 친구다. 형제는 모두 한 학년으로 초등학교를 다녔다. 집안형편 때문인지 호적관계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과거에는 그런 형제들이 더러 있었다.

6학년 때는 형제 둘이 한 반으로 배정받았다. 희귀한 일이긴 하지만 금세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이니까. 짐작이지만 그 형제는 다소 마음고생을 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근만이, 근만이 하고 불렀고(우리는 친구니까), 근천이만 유일하게 형이라 불렀다(그들은 형제니까).


근만이는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모든 것이 우리보다 월등했다. 두 살이나 위이니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도 우월한 유전자 같기도 했다. 운동도 잘했고 미술이나 공예 따위 재능이 뛰어났다. 우리는 근만이와 한 반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근만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반보다 우월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축구, 배구, 농구, 달리기, 씨름 같은 운동시합에서 근만이를 앞세워 나가면 무조건 승리였다.


6학년 봄, 체육대회에 축구시합이 열렸다. 난생 처음으로 나도 우리반 대표선수로 출전했다. 주장인 근만이와 함께 손을 모으고 파이팅을 외치게 된 것이다. 선수 11명이 머리를 맞대고 손을 모은 뒤 '3반 3반 파이팅'하고 외칠 때다.


근만이가 선창했다.

"지금 이 순간, 오늘 이 시합에서 죽어도 좋다. 파이팅."

머리가 쭈뼜 섰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근만이는 다르구나. 나는 경기 내내 이 순간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축구에 몰두했다.



세월이 흘렀다. 근만이는 중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근천이는 계속 학교를 다녔지만 근만이는 볼 수 없었다. 근천이에게 소식을 묻기도 왠지 거북했다. "형은 어디 갔니?" 하고 묻기도 그렇고 "근만이는 어디 갔니?" 이렇게 묻기도 뭐했었나 보다. 어떻게 물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세월이 한참 흘렀다. 근만이가 공수부대에 자원입대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제대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끔 나는 그 형 같은 근만이를 보고 싶었다. 지금 만나면 형이라 부르는 게 좋을지, 근만아 하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할지 알 수 없지만. 만나면 꼭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이 순간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할 때 니가 너무 멋있었다'고.


그런데 결국 그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럴 기회도 사라졌다. 녀석이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근천이에게도 묻지 못했다. 묻는다 해도, 답을 듣는다 해도, 진실을 알 리는 없다. 친구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선택을 하고, 종종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그 중 대표적인 선택이 짧고 굵게 살 것이냐, 가늘고 길게 살 것이냐다. 물론 굵고 길게 사는 이들이 엄청 많을 것이다. 근만이는, 짐작컨대 순간순간을 목숨 걸고 살았지 싶다. 내 기억에서 가장 묵직했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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