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직장인은 불금에 클럽을 간다.
"불금=불타는 금요일"
한주의 마지막 평일인 금요일 저녁을 불타는 듯 신나게 보내자 라는 뜻으로 쓰인다.
평범한 직장인의 근무하는 주 5일 중 금요일은 피로와, 우울함이 정점을 찍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뭔가를 불태워(?) 버리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있다.
이런 마음을 잘 아는 주변동료들 혹은 친구들이랑 같이 술 한잔 기울이며 일주일 동안 쌓인 이야기도 하고 회사도 좀 씹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뒷말도 하면서 길고 긴 저녁을 보낸다.
나 또한 그 시간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새벽까지 각자 사회에서 보낸 시간들을 안주 삼아서 곱씹고
(해결책은 생각도 하지 않고) 문제점을 핏대 세우며 이야기하는 것이 어른들의 진정한 사회생활이고, 성인만이 할 수 있는 대인관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해결은 안 되고 문제의 겉만 핥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한 층 한 층 쌓여만가고 그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우울이 발목을 잡으며 나를 더 우울해지게 만들고 , 무기력증이 옆에 앉아 술을 따라줬다.
번아웃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원래 삶은 다 이런 것'이라며 너만 이런 게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직장인이 다 이렇지.'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런 식의 발상으로 나를 그 영역에 고립시키려는 문화가 너무 숨 막혔다. 점점 삶에 대한 이유도 흐릿해지고 눈에 생기가 없어져갔다.
확실히 정상적이지 않은 삶이었다.
이것이 문제라는 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직장인으로서의 꿈과 커리어를 잘 쌓아나가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언젠가 내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월급쟁이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현재의 위치에서 본인만의 칼날을 날카롭게 갈고 싶었다.
그러려면 먼저 이 삶을 잘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됐다.
작은 물에서부터 헤엄치는 연습을 해야 바다로 나갔을 때 익사하지 않을 테니.
변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되, 미래를 위한 생각+행동을 동시에 장착해야 한다.
중요한 요소들이 몇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체력관리다.
근육은 ‘나’라는 건물을 받치고 있는 지반(=땅)이기 때문에 거기에 싱크홀이 뚫리면 건물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예전부터 엄마는 ‘네 몸은 하나의 성과 같아. 거대한 건물인 거야’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 말이 이제야 어떤 뜻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우울한 직장인은 이것을 깨달은 후로 퇴근 후 클럽을 가기 시작한다. 특히 불타는 금요일에는 큰 변수가 없는 이상 반드시 가주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클럽은 당연히도‘헬스’ 클럽이다.
진부해도 어쩔 수 없다. 진짜 사랑스러운 곳이니까.
특히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헬스를 가서 진짜 불(타는 근육과 연소되는 지방) 금을 보낸다.
일주일 중에 피로도가 높은 만큼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조금 더 꼼꼼하고 효율적으로 루틴을 짠다.
마지막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쾌적하게 원하는 기구들로 운동할 수 있다.
이때는 설령 사람이 많다고 해도 대부분 예뻐 보인다.
본인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 투자하러 온 멋진 사람들이니까.
물론 예전에는 불금 저녁에 혼자 땀에 절여 저서 (가끔 침도 흘린다.) 운동하는 모습이 타인의 눈에는 초라하고 외롭게 보이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지만 요즘은 그러든 말든 그냥 간다.
중요한 건 운동을 할 땐 진짜 초집중모드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히려 이게 안될 것 같은 날은 하루 푹 쉬는 것도 좋다.)
핸드폰도 최대한 보지 않는다.
집중모드로 들어갈 땐 핸드폰도 방해금지모드를 해둔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고요의 시간이다.
그렇게 근육이 찢어지는 맛을 느끼고 있으면 어느 센가 고요한 우주에 오롯이 혼자 있는 느낌이다.
나는 그 고독이 정말 행복하다.
이 감정은 행복보다 고급진 단어로 표현하고 싶은데 내 짧은 작문실력의 한계가 있어 아쉽다.
마치 [자유로움, 해방감, 시원함(땀 배출), 절제력, 통제력 등등 모든 감정들이 맛있게 버무려지는 비빔밥]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진짜 맛있는 맛이다.
* 나는 헬스가 좋아서 활용할 뿐 각자 본인만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종목을 찾으면 된다.
중요한 건 체력 증진에 정말 효과가 있는지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기본이 없으면 결국 무너진다.
내가 대인관계를 무난하게 잘할 수 있는 건 '혼자'의 시간을 잘 사용해서다. ( 사람을 만나고 나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진정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타인과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게 된다. 단 몇 시간이어도 좋고 한 시간이어도 좋다. 강제 고립이 있어야 한다.
마치 가족이랑 한집에 같이 살 때는 불편하다가, 막상 떨어져서 살게 되니 보고 싶고 애틋해지는 느낌이랑 비슷하다.
같이 있을 때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핸드폰에만 머리를 박고 있다거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집중을 못하는 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같이 있을 때만큼은 표정, 행동, 말투 같은 것들을 관찰하며 상대와 교감하는 시간이다. 타인에게서 비치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것은 매우 아까운 일이다.
이 시간을 잘 보내는 연습을 하면 사회생활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업무효율이 극대화되는 시간대에 필요 이상의 농담을 한다거나, 간식타임을 가진다거나 하는 분위기여도
내 시간을 지키는 힘과 의지가 있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타인들도 처음에는 '저 사람 고집이 세다'라고 느낄 수 있지만 [시간 = 돈]의 개념이 가장 확고한 집단에서 직원이 본인의 위치를 지키겠다 눈에 불을 켜면 그들도 점점 내 루틴에 적응이 된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게 최고다.
그렇게 본인의 집중시간을 잘 쓰고 나서 '몇 번중에 한 번쯤'은 타인들과 소통의 시간으로 쓰면 된다. 본인만의 적당한 규칙을 정하는 게 좋다. 같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집중 못하고 혼자 바쁜 척하는 것보다 바쁠 땐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고 본인 루틴을 잡는 게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타인과 같이 보내는 수다타임. 긴장이 풀린 시간에 얻는 다양한 정보들도 있고 어차피 이 또한 사회생활의 연장선이다. 너무 힘주고 살면.. 진짜 힘들다. 곰탈을 쓴 여우가 더 행복한 삶을 살 때가 있다. 혼자만 일하면 일은 더 많아진다.(이거 진짜다.)
고립도 너무 많이 하면 인류애가 사라진다.
뭐든 과유불급. 적당히가 좋다.
지인 중에 한 명은 정말 엉덩이 흔드는 클럽에서 에너지를 얻고 삶의 활기를 얻는다고 한다. (그는 춤추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다.)
개개인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건 이해가 되는 것의 여부를 떠나 존중해 줘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이해는 안 된다.)
다만 본인의 하루를 '투자'한다면 어떤 클럽을 갈지 그건 스스로의 선택이다. 그곳에서 비슷한 사상의 친구를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될 수도 있다.
비슷한 색깔의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은 서로를 물들일 수 있는 힘이 있다. 하루는 단순하게 하루가 아니라 복리로 돌아오는 걸 안다면 선택할 때 조금 더 신중히 할 수 있다.
무게를 치고 싶다고 단 한 번에 목표한 무게를 해낼 수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 조금씩 무게를 쌓아가며 어제의 나를 이길 뿐이다.
나는 나만의 (헬스) 클럽을 선택했다.
비록 눈이 안 좋아서 사람구별은 잘 안되지만 헬스장에서 매번 마주치는 에너지들은 느낄 수 있다.
그런 강한 에너지들과 같은 공간이 있으면 마지막 숫자를 세고 나서도 '두 개만 더 해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불금에 퇴근 후 지친 몸뚱이를 끌고 침 흘리며 미친 듯이 쇠질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대단한 에너지를 내는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진짜 힘들 땐 침도 나오고, 땀도 나오고 , 눈물도 나온다.
의료가 발달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의 대한민국 평균수명은 [83.5세]
100세 시대는 정말 건강한 일부의 사람들만 가능하다.
내가 하는 투자가 훗날 나이가 들었을 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어줄지 모르지만 분명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것을 안다.
10대 때는 "나는 33살쯤 멋지게 죽을래. 그때는 너무 늙은 거 같아."라는 망언도 이런 망언을 하고 다녔다.
이제 그날이 얼마 안 남았다.
죽음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늙을 건지는 선택할 수 있다.
큰 목표는 없지만 나잇값을 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살면서 쌓은 지혜와 노하우들을 필요로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순환시키고 싶다.
헬스장에서 타인에게 말을 안 걸지만 나이가 드신 분들께는 가끔 인사를 건넨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 백발이 되셨음에도 헬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멋진 분이 계신다.
그분을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나도 훗날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긴다.
35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이런저런 꿀팁을 알려주셨는데 마음속 깊이 새겨들었다.
이 중에 3 가지만 말해보자면
1. 근력 운동을 꼭 할 것
2. 운동을 할 수 있을 때 꾸준히 할 것
3. 나이에 맞게 적절한 운동을 할 것
이런 내용들이었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당연한 내용임에도 우리는 몸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막 가져다 쓴다.
본인의 한계를 파악하고 그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운동을 하면 생각보다 내가 더 강할 때도 있고, 생각보다 더 약할 때도 있다.
나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 운동의 순기능이다.
육체와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둘 중에 하나가 약해졌을 땐 나머지 하나가 강해야 버텨준다.
우울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을 때도 건강하게 다져둔 체력으로 버텼다.
요즘은 나만의 목표를 위해 사는 하루는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 운동할 수 있는 건강한 몸도 감사하다.
그러니 주변에 누군가 불금에 헬스클럽을 간다고 할 때는 적극 응원해 주시길.
한 번쯤은 따라가서 그 열기를 느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