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장기전 이니까요
운동을 좋아한다
정확히 풀어서 적어보자면
운동할 때 몸에서 땀이 배출되는 느낌이 좋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할 때 개운한 느낌이 좋다.
그날의 운동 할당량을 채울 때 드는 만족감이 좋다.
하루를 끝내고 누웠을 때 아릿하게 오는 근육통이 좋다.
그런데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원한다고 해서 매번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신체리듬은 오르락 내리락을 하고 그 와중에 여자는 호르몬의 주기에 따라 감정, 몸의 컨디션이 큰 폭으로 널뛰기까지 한다. 이 기간 동안은 세상이 굉장히 트로피칼 무지개 맛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당연히 신체구조도 다르고 리듬의 패턴도 다르겠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누구나, 반드시 컨디션이 나락에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 들 수 있는 무게인데 이때는 죽어도 안 들리는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거나, 이상하게 어떤 특정 부위가 갑작스러운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진짜 억울하고 미칠 노릇이다. 기껏 힘든 운동을 하려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뚱이가 아주 미워지는 날이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거 같은데 나만 몹쓸 연체동물이 된 것처럼 힘이 없다. 이럴 때는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내 몸이 잠시 충전(=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집 피우고 억지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효과를 제대로 맛보게 된다. '조금 있으면 낫겠지.' '이러다가 괜찮겠지.' 하면서 끌고 가다가 결국에는 고질병이 되거나 더 크게 아프게 된다. 일부 동물들은 아플 때 은신처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결국에는 한계가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는 동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전에는 부정했었다. 내가 약해진 다는 것을. 뭔가 신체에 굴복하는 것 같고 그냥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무게를 올려가면서 고강도로 장시간 운동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많은 테스트를 해본 끝에 결국 깨달았다. 휴식이 없는 운동은 노동일 뿐이라는 것을.
체력이 떨어졌을 때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 기간은 천국의 계단도 싸이클로 바꿔주거나 원판에 대한 욕심도 내려두고 최소한의 무게로 운동한다. 간혹 그것도 못하겠으면 그냥 걷는다. 걷는 것도 못하겠으면 집에서 쉰다. 정말 힘들면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잘 때도 있다. 맛있는 것도 먹는다. 이때는 '체력을 보충하는 정당한 휴식'이라고 생각해 주자. 그렇게 자고 나면 정말 훨씬 살 것 같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일어나면 그뿐이다. 어떤 큰 목적이나, 본인만의 신념이 뚜렷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은 운동을 하는 이유가 건강을 위해서 일 것이다. 타인들이 나보다 더 건강해질 것 같지만 잠시 멈추는 이 시간은 재정비의 기간이라는 걸 인지하면 조급하지 않다. 근육마저도 운동할 때가 아닌 휴식기간에 생성이 된다. 운동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을 믿고 적정한 쉬는 기간을 가진 뒤 다시 출발하면 된다.
헬스장에서 아주 가끔씩 다른 사람이 무게 치는 걸 구경할 때가 있다. 나보다 잘하는 것 같으면 눈길이 가기도 한다. 뭔가 따라 할만한 꿀팁 같은 건 없나 하고 괜히 기웃거리는 것이다. 한날은 무게를 계속해서 올리다가 몇 번의 도전 끝에 무게를 내리고 다시 자세를 잡으며 집중하는 사람을 봤는데 꽤 인상 깊었다. 이게 뭐 별 건가 싶겠지만 운동을 할 때는 보통 무게를 들 때는 상향곡선만 생각하게 된다. 5kg, 10kg, 15kg의 순서로 무게를 늘리기 시작했다면 그다음은 반드시 그 이상의 무게를 들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이하로 내리면 무게에 지는 것 같고, 이상하게 자존심도 상한다. 그러다가 가끔 에고리프팅[Ego lifting]을 할 때도 있다. (에고리프팅이란 지켜야 하는 동작 범위나 자세보다 오로지 중량에만 목적을 두는 걸 말한다.) 그렇게 들고나면 무게에는 어찌어찌해서 이긴 것 같지만 막상 제대로운동을 한 건지, 그냥 무게랑 씨름을 한 건지 헷갈린다. 어차피 신체에는 한계가 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의 무게도 존재한다. 운동은 결국 나를 위해서 하는 건데 본체가 망가져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드는 무게가 나와 맞지 않고 버겁다면 일보 후퇴할 줄도 아는 자세가 진짜 나를 위한 행동인 것 같다.
한때 미라클모닝의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땐 운동과 언어공부에 미쳐 있던 터라 나 역시 하루 5시간도 안 되는 수면루틴으로 6개월 정도를 보냈었다. 그때 개인적으로 화가 나는 일도 있어서
악에 받쳐서 분노 게이지를 운동, 학습으로 표출하던 때였다. 이때도 운동은 주 3~4회(많으면 5회~6회) 근력 1시간은 필수로 넣었다. 눈떠보면 2시간을 해버릴 때가 많았다. 계획보다 항상 더 많이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갔고 결과부터 말하면 언어공부는 확실히 큰 폭의 성장을 일으켰다. 언어, 자기 계발 등은 마이너스가 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다만 신체, 정신적으로는 번아웃이 왔다. 그땐 정신이 힘들어질 때면 답은 무조건 운동뿐이라며 3시간씩 고강도로 운동을 했는데 이때야 말로 운동이 아닌 '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문득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정말 회사-집만 반복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진짜 무섭고 소름 돋게도 운동을 안 하고, 공부를 안 해도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흘러가버린 것이다. 운동이던 공부던 반드시 휴식기간을 가지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효율적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휴식 기간에도 소소한 챌린지를 주기도 한다. 배달을 먹고 싶을 때는 주문을 하고 나서 가게로 픽업을 가는 게임을 한다던지, 먹고 나서는 산책 나가기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활동량을 늘릴 수 있다. 누가 보면 참 가만히 못 있는다 싶겠지만 잠은 자면 잘 수록 더 자고 싶고, 먹는 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게 사람이다. 굴을 파는 것도 적당히가 좋다.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가면 나중에 돌아 나오기가 정말 힘들다. 어떻게든 움직임 할당량을 채울 수 있는 본인만의 장치를 만들어 주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