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꽃나무>
벌판 한가운데에
꽃나무 하나가 피어 있었다.
혼자였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그 나무는
자신이 ‘꽃나무라면 이래야 해’라고 믿는 어떤 상을
끝없이 되새기며
스스로를 더 꽃나무답게 피워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나는 가끔
누군가를 보고 나를 본다.
전혀 다른 사람인데도,
그 안에서 나를 본다.
너무 닮아서
아프고
너무 보여서
무섭고
그래서
도망친다.
그 사람이 나를 닮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누군가는
나무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자신을 키우고
외로워도
흔들리지 않고
그렇게 피어난다.
나는
그 앞에서
‘나도 그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척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속으로는 도망친다.
정작
나는 그 꽃나무처럼
살아본 적이 없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상도
그 꽃나무가 너무 고와서
너무 외로워 보여서
도망친 게 아니라
너무 자신과 닮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연기를 한 게 아닐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
그 사람을 걱정하는 척
위로하는 척
사랑하는 척
그렇게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결국 다 흉내일 뿐이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되어본 적이 있었을까.
누구의 흉내도 아니고
누구의 역할도 아니고
내가 되고 싶었던 나 말이다.
꽃나무는
자기가 생각한 꽃나무가 되려고
무서울 만큼 애쓰고 있었다.
그게
사랑이고
헌신이고
믿음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그 꽃나무는
여전히 벌판에 피어 있을까.
아무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에서
지금도 자기 자신을
한껏 피워내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런 사람들 앞에서
도망치는 쪽일까.
아니면 이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용기쯤은 생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