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초여름>
벚꽃이 지고 나면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웃고,
고개를 들어 꽃비를 맞던 그곳인데.
이제는 꽃 진 자리마다
까맣게 영근 버찌만이
소리 없이 빛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이 계절이
괜히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사람들은
한 철의 화려함만을 보고 떠난다.
꽃이 피었을 때는 그렇게나 북적이더니
꽃이 지고 나면
누구도 남아 보지 않는다.
그 뒤에 오는 완성의 시간,
영글어 가는 시간은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흐른다.
문득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좋을 때는 함께하고
눈부신 순간만을 기억하고
조금 덜 예뻐지면,
조금 지치면,
아무도 거기 머물지 않는다.
그때부터가
사실 더 깊어지는 시간인데.
서서히 속이 단단해지고
알 수 없는 빛이 차오르는데.
그 과정을
함께 바라봐주는 사람은
참 드물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의 어떤 시절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일까.
꽃이 피었을 때만 머무는 사람일까,
아니면 꽃이 진 뒤에도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일까.
누군가의 화려한 시절만을 사랑하는 건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건
그 뒤의 허전함과
천천히 다가오는 깊이를
기다려주는 마음.
매번 앞만 보고
새로운 것만 좇느라
지금 영글어 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나간 시간들이
그저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걸
나는 잊고 있지 않은지.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꽃이 피었을 때만 반짝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꽃이 진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는 것을
함께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이제 곧 초여름.
사람들은 또 다른 꽃을 찾아 떠나겠지만
나는 올해는
까맣게 익어가는 그 자리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그곳에도
말하지 않아도 고운 순간들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