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햇살이 내릴 때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by 지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png


요즘은

그런 돌담을 보기 힘들다.


요철 없이 매끈하고

단단하게 들어맞는 벽돌로

딱 맞게 지어진 담이 대부분이다.

틈이 없다.

흙도, 풀도,

잠시 숨 돌릴 여백도.


그래서일까.

김영랑의 시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런 완벽한 벽이 아니라

돌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그 틈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작은 풀꽃이 피어나는 그 돌담이었다.


예전 시골집 담장은

그 집 근처에서 주운 돌들을

하나씩 모아 쌓은 거였다.

모양도 크기도 들쑥날쑥.

구불구불 이어진 그 담장 위로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는 풍경은

말없이 사람을 안아주는 장면 같았다.


거기선 풀도 자라고,

돌틈 사이에 숨은 벌레들도

햇살 아래서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렇게 담장 위엔

사소하지만 따뜻한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그 돌담은

세상을 철저히 막아선 경계가 아니라

안과 밖을 느슨하게 구분해주는

‘서로의 안부를 허용하는 선’이었다.

안쪽에서 담장 너머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었고,

바깥에서 담장 너머 집 안을 그리워할 수도 있었다.


햇살이 그 돌담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풍경은

말 없이 사람의 등을 토닥이는 장면 같다.

사람의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는 시간.

서두르지 않고,

울지 않아도 괜찮은 오후.


그 옆에는

풀잎이 바람에 스치고

작은 샘물 하나가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고운 봄길이 고요히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눈앞에 살며시

푸른 하늘이 열렸다.


세상이 참 복잡하게만 느껴질 때

이런 풍경을 마음 안에 하나쯤

품고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덜 다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누군가와 나 사이에

돌담 같은 마음 하나 놓고 싶다.


구멍이 숭숭 뚫린

살아 있는 경계.

햇살이 닿고,

풀도 자라고,

말 없이 다가와도 괜찮은 여백.


그 위로

조용히 햇발이 스며드는 걸 함께 바라보며

그저 오늘 하루만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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