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 뒤에도, 거기 남아주는 마음

이문재 <초여름>

by 지나
벚꽃 보러 왔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나요 꽃 진 자리 자리마다 까맣게 빛나는데꽃 보고 가신 사람들 다 어디에 있을까요 까맣게 익은 버찌 떨어져 꽃 떨어진 자리 자리마다 다시 까맣게 번지는데고개 들어 꽃비 맞으시던 두 손 모아 꽃잎 받으시던 까치발로 발아래 꽃잎 피하시던 사진 찍어 급하게 보내시던 그 많던 고운 사람들사람들은 그렇다고 해도 꽃 진다고  (1).png


벚꽃이 지고 나면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웃고,

고개를 들어 꽃비를 맞던 그곳인데.


이제는 꽃 진 자리마다

까맣게 영근 버찌만이

소리 없이 빛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이 계절이

괜히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사람들은

한 철의 화려함만을 보고 떠난다.


꽃이 피었을 때는 그렇게나 북적이더니

꽃이 지고 나면

누구도 남아 보지 않는다.

그 뒤에 오는 완성의 시간,

영글어 가는 시간은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흐른다.


문득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좋을 때는 함께하고

눈부신 순간만을 기억하고

조금 덜 예뻐지면,

조금 지치면,

아무도 거기 머물지 않는다.


그때부터가

사실 더 깊어지는 시간인데.

서서히 속이 단단해지고

알 수 없는 빛이 차오르는데.

그 과정을

함께 바라봐주는 사람은

참 드물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의 어떤 시절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일까.

꽃이 피었을 때만 머무는 사람일까,

아니면 꽃이 진 뒤에도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일까.


누군가의 화려한 시절만을 사랑하는 건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건

그 뒤의 허전함과

천천히 다가오는 깊이를

기다려주는 마음.


매번 앞만 보고

새로운 것만 좇느라

지금 영글어 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나간 시간들이

그저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걸

나는 잊고 있지 않은지.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꽃이 피었을 때만 반짝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꽃이 진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는 것을

함께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이제 곧 초여름.

사람들은 또 다른 꽃을 찾아 떠나겠지만

나는 올해는

까맣게 익어가는 그 자리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그곳에도

말하지 않아도 고운 순간들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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