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날도 지금처럼 햇살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하던 초여름이었다.
창문을 반쯤 열어두면 살랑이는 바람이 커튼 끝자락을 흔들었고,
옷장 깊숙이 넣어뒀던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으면서
조금씩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실감하던 그런 날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너무 짧아서, 잠깐 놓치고 다시 봐야 했던 그 말.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은 아무렇지 않게 도착했다.
마치 누군가 무심하게 흘린 말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짧은 문장이
그날 하루를, 그 주의 감정을,
심지어는 그 계절 전체를 바꿔놓았다.
나는 요즘 내 마음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애써 무던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꾸 쪼그라들고,
내가 틀린 건 아닐까,
괜히 너무 민감하게 구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만큼의 큰 고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품고 있기엔 무게가 꽤 묵직한 감정.
그걸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몇 마디로 흐리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그렇게 짧은 답을 보내온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거기엔 다정한 해석도,
조언도,
질책도 없었다.
말 그대로 ‘존중’만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무언가 잘 안 풀리는 순간에도,
불현듯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도,
괜히 혼자 서운해지고 나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때도.
“그럴 수도 있지.”
한여름의 열기처럼 확 밀려드는 자기비난과 자책의 물결에
그 말은 마치 그늘처럼 다가왔다.
잠시라도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그늘.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흔들려도,
그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다독여주는 말.
사실, 살아가는 대부분의 순간은
무언가를 잘 해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잘한 일이 아닌가.
초여름의 하루는 생각보다 길다.
하루 종일 밝은 빛이 집안을 누비고
해가 저물 때는 벽에 긴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 그림자 속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문득 스쳐간 말 하나가 마음을 물들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하고,
가끔은 투정부리고,
자주 무너지고,
종종 울컥하지만
이 계절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말 하나로.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은 여름의 뜨거움 속에서도
서늘한 위안이 되었다.
그 말은, 나의 여름을 부드럽게 물들였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말한다면,
그 사람의 무거운 마음을 듣고 난 뒤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정말, 그걸로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