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울음이 내 안을 지나 세상을 적실 때

송수권 <지리산 뻐꾹새>

by 지나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하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1).png


어쩔 땐 내 마음속에서 들리는 슬픔이 너무도 커서

여러 사람이 나를 향해 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나의 슬픔이 아닌 것처럼.

지나온 시간들, 닿지 못한 말들, 미처 보듬지 못한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웅성거린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그 울음이 사실은 단 하나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너무도 길게 돌아서, 너무도 복잡하게 메아리쳐 왔기에

다른 울음처럼 느껴졌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은 오롯이 나의 울음이었다는 걸.


어쩌면 우리의 고통도 그런 게 아닐까.

여러 겹의 이름을 붙이고

“이건 외로움이고, 저건 분노야, 또 저건 후회지…”

말을 덧붙이지만,

결국 그 모든 감정의 시작은 한 뿌리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봄날,

지리산에서 울던 뻐꾹새 한 마리가

하나의 울음을 쏘아 올렸고,

그 울음은 산 너머 산으로 흘러가

여러 마리의 울음처럼 퍼져 나갔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처음엔 나 하나 힘든 줄 알았는데

세상 전체가 함께 우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들.

-

세상이 조용해졌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진짜 울음은 한 사람의 가슴에서 시작됐고,

그 여운은 끝내 강이 되어 흘렀다.

그리고 그 강물은,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안고서도

침묵으로 모든 걸 견뎌낸 사람만이

끝내 마주할 수 있는 한 줄기 빛이었다.


나도 언젠가

그 뻐꾹새처럼

울음을 삼키고 삼키다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이 되는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때,

내가 흘린 눈물은

누군가의 철쭉밭을 불태우는

가장 아름다운 붉은 빛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건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살아내는 일.

울음이 흘러,

나 아닌 너에게 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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