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만 알던 날들의 끝에서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by 지나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png


예전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기쁨이 많은 삶이 좋은 삶이라고.

항상 웃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

슬픔은 부끄럽고 감추어야 하는 감정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당당하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무시하고 피하고 눌렀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아, 다들 그러고 살아”라고 말했고

누군가가 힘들다 토로하면 “곧 나아질 거야”라며

조용히 대화를 끝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불편함을 피하려는 내 방어였던 것 같다.

남의 슬픔도, 내 슬픔도 마주할 용기가 없었고

기쁨이라는 가벼운 외피 속에서

어떤 것과도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다.


어느 날,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문득 이런 말을 했다.

“넌 슬픔을 잘 모르는 사람 같아.”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정말 그랬을까.

나는 슬프지 않았던 게 아니라

슬픔을 무시하고, 미뤄두고, 부정했던 것 같다.

언젠가 정리될 거라 믿으며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어느 순간 나를 둘러싼 공기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슬픔은 없던 게 아니라

내가 끝까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호승의 시를 읽으며 이런 마음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귤 몇 개 값 깎으며 괜히 웃었던 내 모습,

뉴스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도 마음 한 켠을 얼버무리던 나의 감정,

가까운 누군가가 조용히 아파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위로하는 법을 몰라 피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슬픔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기쁨만이 너를 사람답게 하는 것이 아니야.”

그 말에 비로소 귀를 기울이게 됐다.


슬픔은 어떤 감정보다도 평등했다.

누군가의 무거운 짐을 느끼게 하고,

다른 사람의 속내를 헤아리게 하고,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했다.


나는 이제야 안다.

슬픔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는 걸.

흘릴 줄 아는 눈물이 사랑을 깊게 만든다는 걸.

기쁨은 순간을 빛나게 하지만,

슬픔은 삶 전체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살면서 나는 여러 사람의 기쁨이었고,

또 여러 사람의 슬픔이기도 했다.

때론 누군가에게 무관심한 타인이었고,

때론 외면당한 사람이었다.

슬픔을 부끄러워하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미성숙한 마음을 숨기느라 애쓴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슬픔을 지나온 사람만이

진짜로 따뜻해질 수 있다는 걸.

눈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새로운 감정이 피어나는 걸 본다.

그건 연민이거나, 이해이거나,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조용한 아픔 앞에서

가만히 옆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괜찮다는 말보다

“나도 그래”라는 공감의 말이

때로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슬픔은 삶의 끝이 아니고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걸

조금씩, 아주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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