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나, 당신은 당신일 뿐.

by 지나

나와 정말 생각과 가치관, 취미, 호불호 등등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영혼의 쌍둥이 (animal gemela)'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고 뭐든 통하니 함께하면 만사형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기도 좋아한다. 특정 집단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기도 하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 거부감을 가지기도 한다. 이런 구분을 하기 좋은 것이 ABO 식 혈액형이었다가 지금은 MBTI로 바뀐 것이 아닐까. 나는 의학은 전혀 모르니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어떻게 지구상의 이 많은 사람이 이런 종류 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A형이면 죄다 소심하고 겁 많고 속 좁다고 하고, B형은 나쁜 사람, O형은 마냥 사람 좋은 그리고 AB형은 바보 아니면 천재 혹은 미친 사람이라고 틀에 박힌 선입관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었다. 우리 집만 해도 세 식구 모두 A형인데 전부 성격이 다른데.

제목 없는 디자인 (21).png


반면 MBTI는 심리학 기반이라 그런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처음엔 딸이 하는 것을 보고 함께 인터넷에서 검사도 했고 우연한 기회에 전문 기관의 검사지로도 했었다. ISTJ와 INTP. 너무나 확실한 쪽이었기에 결과는 같았다. 결과지를 읽으면서 고개를 계속 끄덕이다가 다른 MBTI도 습득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보면 대충 어떤 유형인지 짐작도 해 보고 그 짐작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ABO 식 혈액형 성격처럼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한다. 내 경우인 ISTJ만 해도 정해진 틀에 벗어나기 싫어하는 성실하지만 재미없고 딱딱하고 항상 심각한 사람, 로봇 같은 감성에 그런 루틴을 살아가는 것이 편한 사람 등의 편견을 많이 듣는다. 다 맞지도 틀리지도 않다. 나는 소심하고, 조용하고,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농담인 줄 알아도 속으로는 '말에 뼈가 있을 거야'라며 생각에 잠기는 타입이다. 내가 정한 루틴을 아주 정확히 분초를 다투지는 않더라도 대충이라도 지키는 것이 마음에 편하다. 또한 이 루틴을 깨는 갑작스러운 약속을 정말 불편해한다. 상상을 하긴 하는데 현실적인 상상을 조금 더 하고 (로또 맞으면 뭐 할까 같은 상상은 그것만으로 행복해진다) 논리적이지 않아도 뜬금없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과 웃음 포인트가 좀 달라서 웃기다는 것엔 안 웃고 아무도 안 웃는 것에는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별 것 아닌 것에 혼자 감동받아 눈물방울을 흘리는 사람이 ISTJ라고 하는 나다.


제목 없는 디자인 (19).png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쌍둥이조차도 다르다. 그러니 영혼의 쌍둥이는 있을 리 없다. 나와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나는 오롯이 '나'로 살 수 있는 이유가 된다. ISTJ라도 백만 가지 이상의 다른 사람이 있을 테고 그러니 나는 나만의 성격, 특성, 취미, 취향, 생각, 가치관을 가진 독립된 주체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A형이며, ISTJ이고, 약간의 진보 성향을 가졌지만 수구적인 면도 있는 보수적인 사람, 어릴 적 성격과 지금 성격이 좀 다른 사람, 남 앞에서 말하기를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떨려하지만 글을 통해서는 별 말을 다 하는 사람 (키보드 워리어나 핑거 프린세스는 아니라고 생각함), 남녀 차별을 싫어하지만 성별 간 다름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차이나는 대우 혹은 취급은 받아들이는 사람, 나이가 좀 있는 기성세대지만 어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결에 더 맞는 사람 그래서 어린 친구들이 더 많은 사람, 음악을 듣는 것만 좋아하고 연주하거나 부르는 것은 질색이고 소질이 하나도 없는 사람.......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은 특징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속으로 'ISTJ는 로봇 같은 인간이군.'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