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한 푼 섞어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나는 늘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낮아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 세상에는 알고 싶고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나는 그 대부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수학, 과학 같은 분야는 내게 마치 뜻도 모르는 알파벳을 소리로만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완전한 문과 성향의 나에게 그런 책들은 이해의 벽이 높다. 하지만 내가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분야, 그러니까 역사, 정치, 사회, 철학 같은 인문학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 순간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들을 주로 사지만, 산다고 다 읽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책을 손에 넣는 순간, 마치 지식이 업그레이드되는 듯한 착각이 들고, 완독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내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나를 채워가는 과정이자 지식 획득의 수단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사회 비판이나 풍자를 녹여낸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다. 특히 조지 오웰 같은 작가의 글을 읽으면 ‘와, 이렇게도 비유할 수 있구나. 이렇게 날카롭게 풍자하다니!’ 하면서 연신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쉽지는 않다. 두 번, 세 번 읽어도 내 이해 수준이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심장보다는 뇌를 자극하는 신선한 충격이 좋다. 그러면서도 문득 ‘나는 정말 부족하구나.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결될까?’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결국 문학도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로 삼고 있는 셈인데, 혹시 너무 딱딱하고 감성 없어 보이나? 그래도 나는 이런 것들에 끌리는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바뀌고, 온라인 활동이 활성화되던 시기, 정말 우연히 ‘시 필사’를 하는 모임을 열게 되었다. 마침 오픈 채팅방에는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나도 함께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는 ‘시’를 필사하고 감상평을 나누는 모임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사실 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고,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데 같은 시를 계속 읽다 보니 내 나름의 시각이 생겼다. 그리고 문득 ‘반드시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같은 작품을 읽고도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 필사 모임이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의 ‘감성’을 자극하려 노력 중이다. 가끔은 ‘이런 명시를 그렇게 해석해도 되느냐’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문학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평론가들의 해석도 결국 하나의 관점일 뿐, 정답은 아니다. 그저 가이드일 뿐이다. 그러니 나처럼 현실적인 사람, 감성이 부족한 사람, ISTJ 성향을 가진 사람도 계속 읽고 또 읽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솟아나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말랑한 시를 딱딱한 논리로 풀어버리는 습관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시도한다.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읽고 또 읽으며 부족한 점을 채우고,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닫힌 사고를 열어주는 힘. 결국 글자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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