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머리 앤>이 알려주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메슈와 마릴라는 중년 남매로 한 집에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다. 두 남매는 고아원에서 자신의 농장일을 도와 줄 남자아이 입양을 위해 스펜서 부인에게 부탁한다. 메슈는 부탁 후 약속 장소로 갔지만,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여자아이가 빨강머리에 주근깨 많은 '앤 션리', 소설 <빨간머리 앤>의 주인공이다. 원래 남자아이를 데려갈 예정이었던 메슈는 혼자 있을 앤의 사정에 마음이 동했다. 결국 동생의 잔소리가 걱정이지만, 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와. 기뻐요. 아저씨랑은 잘 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고, 아이는 어른들 눈에 봉이게 있으되 소리는 내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돼서 정말 안심이예요. 그동안 그런 소리를 백만 번은 들었거든요. 전 말도 거창하게 한다고 사람들이 비웃어요. 하지만 머릿속에 거창한 생각들이 있으면 거창하게 말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안 그런가요?"
<빨간머리 앤> 중에서
메슈는 앤은 엄청난 수다쟁이라는 걸 알았다. 호기심이 많고, 사소한 것에 과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했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처럼 보이는데, 그러면서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의 불안감까지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많은 어른이 말 많은 아이를 싫어하지만, 메슈는 앤의 수다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은 메슈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여기가 앞으로 살 집이라는 사실에 앤은 감격스러웠다. 집에 있던 메슈의 여동생 마릴라는 남자아이를 찼았다. 마릴라가 볼 수 있는 아이라고는 기대와 다른 빨간머리에 주근깨 많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메슈가 좌초지정을 설명했으나 마릴라는 단호했고, 고아원에서 어른들의 눈치를 살아온 앤은 분위기를 읽고 울먹였다.
"저를 원치 않으시는군요! 제가 남자아이가 아니라서 필요 없으신거죠! 그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껏 절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일들이 오래갈 리 없다는 걸 알아어야 했는데. 절 정말로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아, 어쩌죠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빨간머리 앤>중에서
마릴라는 앤은 원하지 않았다. 농사일을 도와 줄 건강한 남자아이가 그들에겐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에게는 딱한 사정이 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시간도 필요했다. 잠시동안이지만 앤을 집에서 쫒지 않기로 하며 메슈, 마릴라, 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언맨, 슈퍼맨과 같은 사람은 분명 특별한 존재다. 초월적인 힘이 없지만 나의 우상인 마이클 조던 같은 사람 역시 특별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이들이 특별한 까닭은 아무나 이들처럼 될 수 없어서다. 모두가 영웅이 되거나 사랑받는 인기인이 되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모두가 이들처럼 세상을 구할 힘이 없어도, 뛰어난 운동신경이 없어도 특별함을 만들 수 있다. 농사일을 도와 줄 수 있는 남자아이만 되어도 마릴라와 메슈에게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적어도 메슈, 마릴라 남매와 같은 나이 있는 남매에게는 특별해질 수 있다. 영웅의 특별함에 비해 상당히 인간적이다. 그럼에도 앤은 가질 수 없는 특별함이다. 앤이 농장일을 도우거나 힘쓰는 여러일을 할 수 있더라도, 힘 있는 남자아이보다는 부족한건 사실이니까.
앤처럼 남들보다 탁월한 능력이 없는 사람은 특별해질 수 없는 것일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면 정말 쓸모없을까? 쓸모를 넘어 남에게 불편과 불행을 주는 '악'이 되는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에게 특별해질 수는 없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해질 수 있다. 특별한게 없던 앤을 내보낼 예정이었지만, 마릴라는 앤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매슈는 이미 앤이 좋았던것 같다) 앤의 수다가 못마땅할때도 있었지만, 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학교도 보내고, 하면 좋은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알려준다. 사고를 치면 혼낸다. 어느날은 자기 물건이 사라져 앤을 의심했지만, 오해였다는 걸 알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앤은 슬플때도 있지만 그런 마릴라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마릴라에게 앤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고, 앤에게 마릴라 또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물론 시간만 흐른다고 특별해질 수 없다. '상대를 아꼈던 시간'이 필연적으로 있어야한다. 즉 누군가의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의 어떻게 보냈냐에 따라 달려있다. 이로서 앤은 마릴라 메슈에게 진정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남들보다 탁월한 능력이 없더라도 괜찮은 '진짜 특별한' 존재다. 진짜 특별한 존재가 되면, 상대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자기 존재 자체가 된다. 앤은 두 남매에게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궁극이었다.
아마 앤은 고아원의 아이들 중에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을 것이다. 소설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자기보다 어린나이에 새 집으로 입양되는 아이를 보면서 자란걸로 추측된다. 그때마다 자신의 빨간머리와 주근깨가 이상해보였을 것 같다. 점점 나이가 들 수록 어른의 사랑을 받기에는 어려워 진다는 우울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우울감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만, 누군가는 스쳐지나갈 일에도 앤은 수다를 떨며, 즐거운 일에는 즐겁다고 분명히 표현한다. 그리고 눈물이 날만큼 슬프다면 슬프다고도 표현한다. 마치 즐거운 감정을 소중히여기고, 슬픈감정은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 것 처럼. 앤은 자기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안다. 세상이 자기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아도, 이미 자기를 특별한 사람처럼 대했다.
"이 길 모통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전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을래요!"
<빨간머리 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