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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an 23. 2020

KBO, 선수협에 대한 협상의 자세가 되어 있는가?



  처음에는 무작정 선수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의 최대치를 정하려고 했다. 이후에는 불합리한 FA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당근과 함께 세부 규정 하나 안 정해놓은 샐러리캡을 들이댔다. 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샐러리캡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했더니, 이제는 하한선 없이 상한선만 있는 제도를 만들고 "하한선은 추후 정하겠다"라고 한다. 이런 모습을 2018년 말부터 지금까지, 1년 반 가까이 보여주고 있다.

  과연 작금의 KBO가 선수협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것을 제대로 된 협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더 이상 협상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냥 선수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지난 21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2020년 제1차 이사회를 개최한 KBO가, 6시간가량의 마라톤 회의 끝에 샐러리캡 및 FA 제도 개편안을 확정 지었다. 이 개선안에 따르면 당장 2020시즌 종료 직후부터 FA 등급제가 도입되고, 부상을 당한 선수가 FA 등록일수를 채울 수 있는 부상자명단 제도가 생긴다. 2021년부터는 최저연봉이 27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인상되고 2022년에는 FA 취득 기간이 단축된다.

  지난 12월 2일에 이대호 선수협 회장이 "기준도 없는 제안은 강압적인 것 아니냐"며 비판했던 샐러리캡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도 정해졌다. 2021년과 2022년의 외국인선수와 신인선수를 제외한 각 구단의 연봉(연봉, 옵션 실지급액, FA의 연평균 계약금) 상위 40명과의 평균금액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이 상한액이 된다. 샐러리캡 상한액 초과 시에는 1회 초과 시 초과분의 50%의 제재금이 부과되고 2회 연속 초과 시 초과분의 100% 제재금과 다음연도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 3회 연속 초과 시에는 초과분의 150% 제재금과 다음연도 1라운드 지명권 9라운드 하락이라는 제재를 받게 된다.

  얼핏 보면 두 달 전 선수협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보인다. 샐러리캡도 지키기 쉬운 것처럼 느껴진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지금도 샐러리캡에 걸리는 팀이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포츠경향의 조사에 의하면 2019년 연봉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샐러리캡은 87억 1620만원이며, 이를 어기는 구단은 SK(4억 4940만원)와 KIA(1억 8590만원), 그리고 롯데(7억 3340만원)뿐이었다. 이번 이사회 결과가 "최대한 선수들의 입장을 고려해 만들어진 개선안"이라고 설명한 KBO 관계자는, "샐러리캡 시행은 선수협이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를 결정한 부분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소진율'이 없는 샐러리캡 제도의 시행은 무엇보다 저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 큰 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겉보기에만 그럴싸해 보일 뿐, 여전히 선수협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으며 선수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개선안이다. KBO가 제시한 소프트 캡에 상한선만 있고 하한선(이하 소진율)은 없다는 점에서 이를 추측할 수 있다. 소프트 캡의 소진율이란 구단이 해당 시즌에 선수단 연봉으로 지출해야 하는 일정 비율의 금액을 의미한다. 이는 구단이 선수단 연봉에 지나치게 적은 금액을 사용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나 KBO는 이번 이사회에서 '윈나우 팀을 위한' 관대한 상한선만 설정했을 뿐, '선수들을 위한' 하한선은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물론 매년 수십억의 FA 계약이 터져 나오는 KBO리그에서 소진율 설정이 무슨 의미냐는 반론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KBO리그 구단들의 트랜드가 '더 적은' 선수단으로 '효율적인' 운영을 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또한 KBO리그는 선수단 연봉 총액과 승률이 크게 상관없는 리그이기 때문에 샐러리캡의 도입 이유가 '몸값 줄이기'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소진율의 필요성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이대호 회장은 이러한 점을 우려해 "샐러리 캡 제도 유형과 상한선, 그리고 하한선 금액을 정확하게 다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달 뒤 돌아온 것은 하한선 없는 샐러리캡이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샐러리캡을 시행한 뒤 추후 하한 금액을 추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나서 뒤늦게 하한선을 추가한다면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 것이다.



선수협이 지난 22일 발표한 입장문의 일부 내용.

  결국 어제 오후, 선수협은 KBO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함으로써 이번 제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입장문에서는 샐러리 캡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KBO가) 밀실행정으로 통보를 하는 상황입니다."라는 문장에서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KBO는 2018년 말에 선수협과의 협의 없이 단독으로 FA 제도 변경을 검토하였고, 그 결과 4년 80억 상한제가 등장했다. 이는 당연하게도 거절당했다. 이듬해 7월에 선수협이 'FA 보상제도 폐지'를 조건으로 FA 상한제를 받아들이겠다며 협상을 시도했으나, 구단들이 이에 반발해 없던 일이 되었다.

  이후 '보상제도 폐지&상한제'의 대안으로 '등급제&샐러리 캡'이 등장했다. 샐러리 캡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선수단 연봉 총액과 성적이 비례하지 않는 리그 특성상 대놓고 '구단 운영비 감축'이 목적이다. FA 상한제만큼 해당 제도를 경계한 선수협은 구체적인 규정을 설명하라고 했지만, 이번 이사회에서도 안전장치 없는 샐러리캡이 나왔다. FA 등급제는 선수들에게 득이 되는 제도가 맞다. 하지만 선수협이 일차적으로 원했던 것은 'FA 보상제도 폐지', 혹은 'FA 자격 재취득 연한 4년 폐지'였다. 이는 당시에도 그랬고, 이번 이사회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KBO 관계자는 선수협의 이번 입장문에 대해 "이사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모두 공개해 발표했다. 밀실 행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김태현 신임 사무총장이 1월에 취임한 후 세 차례를 만났으니,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유감스럽다"고 설명했다.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밀실 행정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KBO가 선수협과 원활한 협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다.

  아니, 그 이전에 현재까지의 과정을 과연 '협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선수협은 KBO가 요구한 FA 상한제와 샐러리캡에 대해 수용 의사를 드러냈으며 외국인 선수 한 경기 3명 출장 허용 및 육성형 외국인선수 제도 도입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제도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았다. 반면 KBO는 작년 여름에 선수협이 FA 상한제를 수용하며 FA 보상제도 폐지를 요구했을 때부터, 구단에 불리한 조건은 일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협상이 아니다. 그저 모든 면에서 선수 측보다 훨씬 여유로운 위치에 서서, 불리한 계약에 합의하기를 종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전에도 선수협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KBO, 구단 대표, 선수협, 팬들까지 다 모여서 토론을 하고 싶다"며 공개 토론을 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 또한 현재까지의 기사를 취합해봤을 때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KBO가 정말 본인들이 밀실 행정을 하지 않고 있음을, 또한 협상의 자세가 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면. 공개 토론을 고려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FA 상한제, 과연 최선의 FA 시장 과열 완화책일까? - (https://brunch.co.kr/@positiveness/43)

◎ 샐러리캡, KBO리그에 도입돼서는 안 된다 - (https://brunch.co.kr/@positiveness/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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