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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Aug 12. 2024

첫 단추쯤 잘못 끼워도 괜찮다

키움 히어로즈 마무리 투수 주승우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 소속 우완 투수 주승우(24)가 데뷔 첫 단일 시즌 두 자릿수 세이브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키움 구단 역사상 11번째 기록이다.


8월 8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홈 경기에서 9회초 구원 등판한 주승우는 최정-기예르모 에레디아-추신수로 이어지는 상대 팀의 중심 타선을 상대했다. 선두타자 최정을 4구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낸 주승우는 에레디아에게 볼넷을 허용했으나, 5번타자 추신수에게 초구 147km/h 투심 패스트볼로 땅볼을 유도함으로써 병살타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직전 두 경기서 연거푸 6실점 하며 패배했던 키움은 이날 경기서 선발투수 아리엘 후라도와 마무리투수 주승우의 완벽투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승리했다.


이날 경기에서의 맹활약으로써 주승우는 팀 역사상 11번째로 단일 시즌 두 자릿수 세이브 기록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해당 기록을 달성했던 키움 선수 전원이 KBO리그 최고의 구원 투수였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두 자릿수 세이브를 올린 손승락은 이 기간 동안 리그를 통틀어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했다(177개). 김세현(2016~2017)은 2016년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김상수(2017~2018)와 김재웅(2022)은 각각 'KBO리그 최초 단일 시즌 40홀드', 'KBO리그 최초 단일 시즌 20홀드-10세이브'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조상우(2019~2021)와 임창민(2023)은 리그 최고의 구원 투수로서 기량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에 승선한 바 있다.


8일 경기 종료 직후 주승우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5.15였다. 40경기에 등판하는 동안 수 차례 구원에 실패하며 36.2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으며, 승리(2승)보다 패배(5패)가 더 많았다. 지난 2시즌 동안에는 15경기에 나와 19.1이닝을 던지며 1패와 9점대 평균자책점에 그쳤다. 독일의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봤다면 "에그머니나, 첫 단추 한 번 지지리도 잘못 끼웠구나!"하고 혀를 찰 성적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몇 번째 단추인지는 잘 몰라도, 어쨌든 기똥차게 단추가 잘 끼워졌는데.




● '대졸 최대어'? 이면에는 '드래프트 미지명의 분노'가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재학 당시 '대졸 최대어'라고 불렸던 주승우. 그는 고등학생 시절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지명'의 수모를 겪었다. (원본 사진 출처 : 한국스포츠통신)

성균관대학교 시절의 주승우는 최고 150km/h 초반의 빠른 공을 던지는 '대졸 최대어'였다. 고등학생 시절 최고 140km/h 중반대였던 구속은 151km/h까지 상승했다. 성적 또한 신입생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좋았다. 4학년이었던 2021년에는 신인 드래프트 직전까지 17경기서 42.1이닝을 던지는 동안 58개의 삼진을 잡아내고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는 성균관대 스피드건에 '155km/h'라는 숫자가 찍히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주승우가 1학년 때부터 키움 유니폼을 입게 된 이후까지 자신이 '대졸 최대어'로 성장한 원동력을 '분노'로 꼽았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타자로 뛰었던 주승우는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올랐으며, 최고 144km/h의 빠른 공을 던지며 서울고등학교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18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같은 학교의 '타자 최대어'였던 강백호와 함께 지명 회의장이었던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주승우는 마지막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10개 구단 중 어느 팀의 유니폼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주승우는 훗날 <더그아웃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기억에 대해 '분노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지명이 안 된 것에 대한 분노가 컸고 자존심도 상했거든요." 강백호와 함께 서울고 마운드를 이끌었던 자부심에 금이 간 주승우는 육성선수로 들어오라는 프로구단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이름을 먼저 불러준 성균관대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생 시절보다 많이 먹고 우유도 마시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갓 성인이 되어 놀러 다니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 같았을 것임에도 오후 9시가 되면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1년 만에 최고 구속을 151km/h까지 끌어올렸다. 


미지명의 굴욕으로부터 4년 후, 주승우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최고 구속보다 빠른 공을 밥 먹듯이 던지는 투수로 성장했다. 마무리 투수 조상우의 군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던 키움은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조금의 고민도 없이 주승우를 지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대학 진학이 프로 미지명에서 비롯됐음을 기억했던 주승우는 1학년 때부터 들어왔던 '대졸 최대어'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사람을 물고기라고 하는 게 신기하다"라며 담담해했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의 자신과 같이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생각에 좌절했을 후배들에게 "(미지명의 기억은) 다시 도전할 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격려의 말을 남겼다.




● 첫 단추를 잘못 꿰다

(원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조상우의 후계자'로 기대받으며 프로야구 선수가 된 주승우는 스프링 캠프에서 불펜 투구 하나하나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등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구단 자체 청백전과 연습경기에서 부진한 주승우는 그해 시범경기에서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결국 '즉시 전력감'이라는 평가가 애석하게도 개막전 엔트리 합류에 실패했다. 의욕이 과해 동계 훈련 기간 동안 오버 페이스하다 밸런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였다.


퓨처스리그에서 루키 시즌을 시작하게 된 주승우는 많은 공을 던지며 밸런스를 잡으라는 구단의 배려 하에 선발투수로 나섰다. 그러나 좀처럼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고 구속은 150km/h를 상회했지만 좀처럼 영점이 잡히지 않으면서 65.2이닝 동안 47개의 사사구를 허용했다. 시즌 후반에 1군에서 공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4경기 3.1이닝 5피안타 7볼넷 평균자책점 10.80의 저조한 성적만을 기록했다. 데뷔전에서는 선두타자의 1루수 앞 땅볼을 처리하던 중 공을 놓치면서 넘어지기도 했다.


프로 2년차였던 지난해에는 루키 시즌보다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퓨처스리그에서는 17경기 동안 69.1이닝을 던지면서 74개의 안타와 50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한 이닝당 거의 두 명에 가까운 주자를 출루시키는 불안한 투구를 선보인 것이다. 시즌 후반 들어 투수진이 무너지면서 1군에서 11경기의 등판 기회를 잡았으나 16이닝 동안 사사구만 23개를 내주는 등 최악의 투구로 일관했다. 대학 시절 평균 145.2km/h였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2km/h가량 하락했다(143.4km/h).


한편 키움은 주승우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 없이 마무리 공백을 메꿨다. 2022년에는 김재웅과 문성현, 이승호가 번갈아 가며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36세이브를 합작했다. 당시 키움은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세 명의 투수가 단일 시즌에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한 팀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시즌 전 영입한 임창민이 시즌 내내 마무리 투수로 뛰면서 26세이브를 올렸다.


주승우가 첫 단추를 완전히 잘못 끼우는 사이, 기존의 마무리 투수 조상우가 1년 9개월의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스프링 캠프에서도 언론사의 카메라는 2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주승우 대신 새로이 버건디 유니폼을 입게 된 '고졸 1라운더 듀오' 전준표&김윤하 콤비의 불펜 투구에 주목했다.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개막전부터 고졸 신인 투수 삼총사에게 밀려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몇 개째 단추를 잘못 끼운지도 모르겠는 주승우의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이대로 끝장나버리는 걸까.




● 잘못 끼운 단추는 다시 맞추면 그만

(원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2018년의 주승우가 드래프트 미지명으로써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도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않은 창창한 청춘이었던 것처럼,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첫 2년을 아쉽게 보낸 주승우 역시 모든 것이 끝장났다며 한탄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주승우 역시 지난 대만 스프링캠프 당시 "지난 2년은 나에게 잊고 싶은 시즌"이었다면서도 "올해는 다른 것 필요 없이 풀타임으로 뛰며 1군에서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라는 포부를 남겼다.


'당장 프로에 와도 즉시 전력감'이라던 대학 시절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잘못 끼운 단추를 푸는 일부터 시작했다. 주승우는 겨우내 이승호 투수코치와 함께 자신의 대학생 때의 투구 영상을 분석하면서 좋은 시절에는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 살펴봤다. 그리고 이를 참고해 팔 스윙을 빠르고 간결하게 가져간 결과, 최고 152km/h의 최고 구속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평균 구속 또한 143.4km/h에서 147.3km/h까지 끌어올렸다. 성균관대 에이스 시절의 폼(평균 145.2km/h)을 되찾는 것을 넘어서 한 단계 스텝 업한 셈이다.


'강속구'라는 첫 번째 단추를 제대로 끼운 데서 만족하지 않고 세컨 피치까지 완벽하게 다듬었다. 주승우는 지난겨울 '패스트볼처럼 강하게 던지되 회전만 걸어라'라는 이승호 투수코치의 주문을 받들어 새로운 방식으로 포크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평균 136.9km/h, 최고 140km/h의 고속 포크볼을 던지게 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에 넣는 것조차 버거워했던 대졸 신인이 이제 두 가지 구종을 1군 무대에서 무리 없이 구사하게 된 것이다.


괄목할 만한 성장 덕에 많은 경기에 나오게 됐으나 데뷔 첫 풀타임 시즌인 만큼 부침도 있었다. 개막 직후 2개월 동안 11.1이닝 동안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4개의 홀드와 2개의 세이브를 챙긴 주승우는 5월 들어 8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무너졌다. 마무리 보직을 박탈당한 6월과 7월에도 6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계를 체감하며 주저앉는 대신 투심 패스트볼을 연마하며 기회를 노렸다. 이는 주승우가 7월 중순에 조상우의 부상을 틈타 마무리 자리를 되찾는 결과로 이어졌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지난 10일 주승우의 데뷔 첫 멀티 이닝 세이브 직후 "(주승우가) 신인 때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어려운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이런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주승우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도 괜찮다는 것을, 그 경험을 토대로 제대로 된 구멍에 단추를 넣으면 문제 없음을 안다는 이야기다. 현재의 주승우가 1군 마무리로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팬들에게 큰 걱정을 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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