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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Jan 04. 2022

슬픈 이발소 아저씨

부디 힘내시길

집 앞에 늘 가는 이발소가 있다. 중년의 아저씨가 운영하는 이 이발소는 현금 7,000원 저렴한 요금에, 20분 정도나 세심하게 커트를 해 주신다. 요금을 낼 때 미안할 정도로. 

세 달에 한 번씩은 갔으니 작년 10월에는 갔어야 했는데, 아내가 내 머리 커트를 해 보겠다고 하는 통에 한 번 시기를 거르고 오늘에서야 방문을 하게 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떻게 자를지 이야기하고, 그렇게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발소는 혹시 백신 패스가 적용되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백신이라는 말에 아저씨는 큰 한숨을 쉬시더니, 

"백신... 백신 때문에... 오셔서 모르시는구나. 내가 여기 중간에 다른 사람 와서 일하게 했어요.

"아니 무슨 일이라도?"

다섯 달 동안 이발소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1주일에 사람이 가장 적은 화요일만 빼고 늘 영업하시던 분인데.


우리 어머니가 백신 맞고 돌아가셨어요. 그날도 내가 태워서 손잡고 가서 접종해 드렸는데, 내가 내 손으로 어머니 몸에 독을 놔드린 거지. 왜 다 백신을 맞는 분위기였잖아요. 근데도 난 처음에 못 맞게 했어요.  

센터를 다니시는데 거기 계시는 분들 처음에 단체로 접종할 때 못 맞게 했어요. 연세가 아흔다섯 이니까. 그래도 나중에 생각하니까 연세 많으신 분들 코로나 걸리면 위험하다니까. 내가 따로 멀리까지 가서 1차 맞춰 드리고, 그때도 아프다고 하셨거든요. 

그러다가 2차 맞고 나서 4일 있다 119타고 응급실로 가셨어요. 그날 아침에 약 드신다고 물 드시는데 물이 입에서 줄줄 흐르는 거야. 목으로 안 넘어가고. 그래서 이거 큰 일이다 해서 바로 119 불렀지.

그때 어머니가 "나 이번엔 힘들겠다" 하시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지. 내년에 입주하는 아파트에서 같이 잘 살기로 했는데. 

그렇게 병원에 10일 정도 입원하셨는데. 의사가 항생제가 잘 듣는다고 퇴원하라고 해서 했지. 그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 썩을 병원 놈들. 그러고 퇴원하고 며칠 안 있다 또 응급실 실려 가셔서 돌아가셨어요."

듣는 내가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아팠다. 격정적인 말투로 어머니를 잃은 자책감과 아직 남은 고통을 보여주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기에 너무도 안타까웠다.


"내가 이 일 있기 전에 요 앞에 나무가, 큰 나무가 두 그루 있거든요. 그게 간판을 가려서 내가 주인 몰래 잘라 버렸어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밤에 거기 걷다가 잘린 그루터기에 걸려서 발가락을 다쳤어요. 발톱이 시꺼매 졌어요. 아휴. 난 그게 다 어머니한테 일어날 일의 전조였던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나중에 주인한테 내가 말도 안 하고 잘랐다고 고백을 했어요. 정말 미안하다고. 그래서 앞으로는 착하게만 살려고 해요. 이제는 나쁜 행동을 조금도 못 하겠어요. 그래서 내가 어머니 다니시던 교회에 가서 예배도 보고, 봉사활동도 하고 그러고 살아요. 전에는 찬송가 나오면 음이 좋구나만 생각하고 불렀지. 이제는 찬송가 가사가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와닿아요. 목사님 설교하실 때 아직도 눈물 나고 그래요."

그래서 출입문에 '일요일(주일)은 1시 이후에 영업합니다.' 붙여 놓으셨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이, 교회 목사님 말씀하고 같더라고요. 너 형제를 사랑해라. 항상 반갑게 맞아 줘라. 전에는 사이도 안 좋고 그랬는데, 전에는 내가 만원에 다섯 개 하는 사과도 살까 말까 하고 그랬는데, 이젠 2~3만 원 하는 사과도 형제들 사다 주고. 어디 가서 밥값 10만 원은 이제 아깝지도 않아요. 돈 조금 아끼자고 서로 못 베풀고 사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내가 가치관이 완전히 바꿨어요. 그래서 교회 나가서 어머니 또래 분들한테 봉사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돌아가시니까 내가 다시 어머니를 볼 수가 없잖아. 그게 참 그래요. 그래서, 내가 밤에 혼자 있기 힘들면 같이 있어 주겠다고 단골 몇 분이 전화번호도 알려주고 그래요. 그런데 내가 차마 미안해서 전화는 못 하겠더라고요. 그분들이 생각해 주시니까 내가 참 감사해요."


중간부터 목이 매여서 한참을 듣기만 했다.

가족 잃은 슬픔 앞에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할까...

힘내시라고. 잘 이겨내실 거라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부디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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