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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Dec 03. 2020

말이 느린 아이

'어~어~'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우리 부부도 아이가 자라면서 기대하며 상상한 모습이 있다. 언젠가는 말이 트인 내 아이와 이야기하며 웃는 모습 말이다. 채 한 살이 되기 전에 걷기 시작했고 옹알이도 문제없었기에, 이제 말만 트이면 되겠다 싶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목소리와 즐거운 대화. 


'설마, 이제는 말이 좀 트이겠지.' 싶은 기대는, 이제 생각해보니 참으로 염치없는 기대였다. 

영화 '테넷'처럼 시간을 역행해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내가 나를, 정신 잃을 때까지 명치를 (존나게) 세게 치며, 메모지 한 장을 건네고 올 것이다. 

'네가 그러고도 부모냐?'

아이 2살까지는 가정 육아가 좋다는 말에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고, 아내가 종일 아이만 돌봤다. 거기에는 아내의 모국어인 중국어를 아이에게 익히게 하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은 큰 실수였다. 한국에 아는 사람 몇 없는 아내에게 양육 스트레스는 커다란 고통이었다. 아내의 말수는 줄어갔다. 대신에 나라도 집에 있는 아이에게 더 많은 말을 해 주고 놀아 주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이도 어렸지만 나나 아내도 어렸다.


'하루에 몇 권의 동화책을 읽어 주었으며, 하루에 몇 시간 동안 놀이를 같이 했으며, 하루에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알고 있는 아이 육아 신과 부모 봉양 신이 있다. 
그 신은 내가 아이를 위해 쓴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치자. 신의 명령으로, 성인이 된 아이는 내가 아이를 위해 쓴 시간만큼만, 벽에 똥칠하고 있는 나를 봉양한다 해도 난 할 말이 없다. 


나무에 햇빛과 물도 없이 열매가 자라기를 바라듯이, 그저 계절만 바뀌길 바라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노력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의 말이 늦었기에, 다시 생각해도 변명일 뿐이다. 


그렇게 세 살까지 아이의 말은 몇 가지 단어에 그쳤다. 심각성을 알게 된 후, 언어치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에서 비용이 지원되는 언어발달 재활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로 하고, 신청에 필요한 병원 진단서를 떼기 위해 서울 어린이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들어서며 '이제부터 잘하면 돼'와 '나 때문에 애가 어쩌다', 두 생각 사이에서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시작된 언어치료와 함께 집에서도 나름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세 살이 돼도 아직 '어~어~'라고만 하는 아이는 마치 늑대소년과 같았다. 늑대 무리에서 구출한 늑대소년을 키우는 심정으로 이야기도 자주 하고 매일 동화도 들려줬다. 아이는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에 들어갔고, 아내는 독박 육아를 끝내고 27살의 나이로 대학교 편입을 하며 대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네 살이 넘어 드디어 하나의 문장을 말할 수 있었고, 길게는 세 문장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우리는 대만에 가게 되었고, 아이는 한국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다. 대만에서 태어나 쭉 그곳에서 있던 또래 한국 아이들이, 우리 아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을 보고 나서 다시금 반성하고 분발하는 계기로 삼게 됐다. 


이 후로 아이는, 나의 퇴근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굳이 말을 위해서라기보다 해외라는 환경이 우리 가족을 더욱 뭉쳐있게 만들었다. 대만에 있던 2년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간이 흘러 이제 9살이 된 아이는. 이제 한국말도 중국말도 꽤 한다. 

그리고 오늘도 엄마한테 말대꾸를 하다가 작살나게 혼이 나서는, 내 옆에 쪼르르 왔다.

나는 위로라고 한답시고 아이에게 말 마디 했다. 


"오~ 말대꾸 치고는 꽤 논리적이었어."


불과 몇 년 전까지 '어~어~'만 하던 아이에게 논리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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