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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Jan 13. 2021

개 주인을 찾습니다

그 개에 그 개 주인

1년을 기다린 눈이 언제 녹을지 모른다며

밖에 나가서 눈사람 만들기를 하자고 조르는

아이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신났고 나도 설렜다.


아내가 가끔 아이에게 중국어로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있다.

'넘치는 설레발과 과한 기쁜 마음은 종종 나쁜 일을 불러온다.'

'좋은 것은 잠시 뿐이니 기뻐함을 뒤로하고 평소대로 자중하라. '

오늘이 그 날이구나.


마침 내일 아침 먹을거리도 없었기에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오는 노브랜드에 먼저 들렀다. 빵, 요거트, 감자칩, 맥주 한 캔.


아직 날이 차가워서 수분기가 부족한 눈으로는 도저히 눈사람을 만들 수 없었다. 대신 아파트 단지를 운동삼아 한 바퀴 돌면서 눈싸움을 했다. 단지를 절반 정도 돌았을까?

조명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아. 눈 덮인 나무를 배경으로 찍는구나.'

그런데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 뒤에 있어 보이지 않던 개였다. 개는 나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작은 개는 아니었다. 거리는 4~5미터는 족히 되었고, 다행히 목줄을 하고 있었다. 

다행은 개뿔. 개는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고, 길이가 조절되는 목줄은 늘어나고 있었다. 개 주인은 개의 힘을 못 이기는 듯했다. 개는 맹렬하게 짖으며 나에게 더욱 다가왔다. 

'이 개가 돌았나?'

설상가상, 개가 내 2미터 반경에 들어온 순간 개 주인은 목줄까지 놓쳐 버렸다.

나도 모르게 입에선 욕이 나왔다.

"씨발, 뭐야!"

그리고 본능적으로 장바구니를 손에 잡고 후려질 자세를 취했다.

장바구니 안의 빵, 요거트, 감자칩, 맥주 한 캔.


맥주 한 캔이 주는 적당한 무게감과 혹시나 진짜로 후려칠 때 가해질 타격감을 생각하니

맥주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가. 아니야 빵으로 맞는다면 별 타격이 없을 텐데. 어쩌지?

그래. 그럼 위험부담이 있으니 차라리 발로 찰까? 웃기게도 그 십 여초 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개 주인은 땅에 늘어진 목줄을 잡기 위해 눈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하며, 결국엔 목줄을 잡았다. 개 주인과 말을 섞기 전에. 난 아이부터 찾았다. 혼자 용케도 멀찌감치 도망가 있었다.

아이는 어릴 적 사나운 개를 자주 봐서인지 작은 개만 봐도 옆으로 내뺀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고 눈 바닥에 구르기까지 한 개 주인이 민망할 터이니, 별말 없이 가려고 하던 차에. 개는 또다시 나를 향해 짖어댔다.

내 장바구니는 다시금 내 머리 위로, 나의 시선은 개를 향해 조준하고, 아이를 챙기려고 부르는데.

아이는 벌써부터 등을 보이며 전속력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바닥이 미끄러우니 오히려 '살살 뛰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뛰어갔다.

그래. 너부터 살아야지. 


혹여나 내가 목표가 아니고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난 정말 결단을 낼 터였다.

개가 잘못되건 내가 다치게 될 것도 대비해서, 때마침 그 옆을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들고 증인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금 개와의 신경전 끝에 개 주인은 이번엔 확실히 목줄을 쥐며 개를 제압했다.

그리고 개 주인은 아무런 말 없이 제 갈 길을 갔다. 정말 자연스럽게. 

이 개 같은.

그 개에 그 개 주인

 같은  주인.

그 몇 분간 이 사달이 났는데. 빤스런을 하다니.

혹여나 나에게 말하는 사이에 또 개가 달려들까 봐 걱정이 됐다면

멀리 서라도 한마디 해주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집에 와서 몸의 아드레날린이 사라질 무렵, 이해를 해 보려고 해 봤다.  

그래. 그 개 주인에게 그 개는 개가 아니고 사람 아이 같은 거야. 견주는 엄마 아빠, 개는 아들, 딸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좀 짖고, 절대 사람 안 무는 자기 아들, 딸을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지레 겁먹고,

혹여나 맥주, 소주병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장바구니로 내려치려고 한 거 아닌가.


이러고 보니 내가 XXX네. 아~ 내가 XXX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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