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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의 여정 82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82화 / 8장 세번째 조각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82화 / 8장 세번째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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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머는 혼란스러운 머릿 속을 정리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을 살려준 존재가 그가 그토록 적대하던 신 "피데라"였기 때문이었다. 피데라시스를 뿌리까지 박멸하려 노력했던 메스머의 이단 추적대원 세월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릇 광신자들의 피신처는 쉽게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일단 그는 동굴을 떠날 수 없었다. 피데라가 그의 앞에 나타난 이후로.


앞서 눈을 떠 동굴 밖을 나가 이곳이 어딘지를 파악하려 했던 메스머에게 등 뒤로 나타난 마부는, 메스머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고 마부의 정체가 누군지도 모르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전에 그가 깔보았던 마부였기에 거만한 태도가 서스럼없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자 마부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많이 놀라셨죠?"

그는 본체 만 체 하며 자신을 살려준 마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도 않았다. 대뜸 그는 말했다.

"내 검은 어디있나, 네놈이 가져갔겠지? 내놔라 얼른."

마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어르신 드리겠습니다요"

그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니 잿빛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한 번 놀란 메스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육감적으로 몸이 긴장했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무슨 장난이냐! 그간 자릴 비우더니 요상한 재주를 배운 것인가?"

메스머의 질문에 마부가 여전히 미소를 지어보이다가 자신의 모자를 벗으며 손에 쥐었다. 그리고 거꾸로 든 모자 속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사방이 광채로 휩싸였다. 눈을 찡그리며 팔로 빛을 가리려는 메스머가 이제는 참을 수 없단 듯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하자 마부는 인간의 모습에 서서히 조각이 나면서 빛으로써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부였던 피데라가 말했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메스머"

메스머는 얼어붙었다. 그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지금 앞에 있는 존재가 정확히 무엇인진 몰라도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스머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피데라는 그가 입을 다물 여유를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태초에 아버지가 계시고 그 후로 나와 형제가 있었으니.. 나는 빛이요 내 형제는 어둠을 맡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고 메스머는 표현하지 못할 두려움이 사방의 신경으로 뻗어나갔다. 피데라. 군인이라면 적을 정확히 파악해야하듯이 이단 추적대원으로써 이단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그였다. 그러자 그는 살려고 발버둥치려는 피조물로써 방어수단인 기도문을 외웠다.

"땅의 정령이시여, 만물을 키우시는 아버지이자 어머니시여, 물과 숲의 주인이시여....덩쿨로 저를 감싸소서 덩쿨로 저를 감싸소서!"


피데라는 연약한 하나의 인간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보, 그래 너의 주인이지. 그가 어디서 나타날 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조만간 그를 보게 되겠지"

거의 울기 일보 직전으로 메스머는 점차 충혈되어가는 눈으로 앞에 있는 이단의 우두머리를 바라보며 기도문을 읆조렸다. 그러다가 욕을 뱉었다.

"이런 젠장! 덩쿨로 저를 감싸소서 아보시여!"

피데라의 얼굴은 반은 마부의 얼굴이였지만 나머지 반은 파편으로 흩어진 빛으로써 감싸여 있었다. 그런 그가 마부의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니 메스머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제 되었다"

피데라가 말을 하자 메스머가 기도문을 읆조리고 싶어도 더 이상 읆조리지 못하고 침묵하게 되었다. 혀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튀어나올것만 같았다. 눈물이 고이더니 주르륵 흘렀다.


피데라가 이제 재미난다는 표정으로 크게 손을 펼치며 메스머를 반겼다.

"자식이 아비를 버려도 아비는 자식을 버리지 않는단다"

메스머는 일생일대의 도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간 육체적 정신적 도전을 많이도 맞닥뜨리고 헤쳐나온 베테랑 군인이였지만 이제는 신 앞에 선 그는 마치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를 몰랐다. 일단 이단 추적대원으로써의 정체성은 살아있었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도 나는 아보를 위해서 죽을 것이다."

피데라가 그의 말을 듣고 코로 크게 숨을 들이 쉬더니 내쉬었다. 뭔가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지금 아보가 나타나도 그를 반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와 지금 마주하고 있다. 오로지 지금은 너와 나의 시간이다 메스머"

허나 고집센 이단 추적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메스머는 피데라를 반기지 않았다.


피데라가 할 수 없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메스머도 동시에 눈이 감겨져 버렸는데 그의 머릿 속에는 피데라의 일대기가 생생히 그려져 나타났다. 세계를 창조하고 만물을 창조한 이야기와 다른 신들의 공존, 그리고 자녀들의 갈등. 자신이 하늘 전쟁에서 패배해 절벽에서 떨어져 수 많은 조각으로 내려 앉은 사실까지 말 한마디보다 차라리 생생한 이미지로 피데라는 보여주고 있었다. 메스머가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미지가 결코 아니었으며 동시에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정보까지 나타나면서 피데라가 보여준 이미지가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피데라는 메스머의 과거사와 함께 자신과 메스머의 연결고리, 본부에서 헤르논까지 마부와 손님으로 만났던 최근 일화까지 나열했다. 마지막으로 어둠 속으로 모든 이미지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메스머가 눈을 감았음에도 눈이 부실만 한 연출을 피데라는 보여주었다.


잠깐의 교감을 마치고 나자 메스머는 앞에 선 존재를 그제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피데라는 다시 반쪽짜리 마부의 표정에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참회자로써 모범이 될 것이다. 너는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메스머. 나의 자녀 아우테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메스머는 자기도 모르게 이젠 아보의 기도문에서 피데라를 인정하는 고백을 입 밖으로 꺼냈다.

"피데라시여"

피데라는 메스머의 말에 만족을 했는지 차츰 모습이 희미해져갔다. 그는 말을 남겼다.

"곧 다시 나타날 것이다. 당분간은 여기를 거처로 삼고 쉬도록 하여라. 나는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너는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마치 홀로 서 있었던 것처럼 피데라는 사라지고 메스머만이 동굴 밖 바윗 모퉁이에서 동굴을 향해 바라보며 있었다. 그간 그토록 피데라의 티끌이라도 보인다면 박멸하고자 했던 그였지만 이젠 그의 머릿 속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어져 있었다. 당분간의 혼란은 그가 짊어져야할 성장통이었다.



83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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