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80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장편소설 빛의 여정 80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로이딘은 비를 맞고 있는 동굴에서 홀로 모닥불을 핀 채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여기에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비가 그치면 당장 밖을 쏘다니며 의문점을 해결하겠다는 결단을 마침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그의 머릿 결을 스치듯 비추는 빛이 동굴 안 깊숙히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움찔되며 놀란 로이딘은 고개를 돌려 안을 바라보았고 빛은 어둠 속 멀리 안 쪽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게 뭔가 싶어 그는 일어섰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어 튀기고 안 쪽으로 빗물이 새어 들어와 바위 틈을 꽉꽉 채우며 고여가고 있었다.
아치 모양처럼 뚫린 동굴 벽을 지나서 왼쪽으로 나아갔다. 아까 전, 일어나자마자 시테온과 루네를 찾으려 했을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동굴의 비어있는 공간이었으나 맞은 편 벽 앞 바닥에서 빛이 반짝이며 로이딘을 유혹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로이딘은 전혀 알 수가 없어 쉽사리 다가가기 꺼려져 잠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망설이는 로이딘을 두고 벽 면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꿈에서 보았던, 피데라의 전신이 동굴 벽 가득히 나타나면서 그 중심으로 수많은 조각들이 흩어지는 장면이 묘사되어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대륙의 지도로 보이는 그림이 나타나고 위에서 아래로 조각들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 확대하여 이제는 대륙 곳곳의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져 바닥에 박히는 모습들이 연달아 그려지고 있었다. 흩어진 조각중 하나가 바로 로이딘 앞에 있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굴에서 그림을 그리던 빛나는 선들이 튀어나와 천장에서 바닥으로 꽂히는 조각의 모습을 허공에서 연출했다. 그리고 그 선들은 바닥에 빛나는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신기하게 바라보던 로이딘은 그제서야 자기가 만신전 바닥에서 발견했고 동시에 네이즈로부터 뺏었던 피데라의 조각들과 같은 조각 중 하나가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닥에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급히 달려가 무릎을 꿇었고 그것을 꺼내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서서히 세모꼴로 드러나는 조각이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헌데 어째 자신의 의식이 흙을 깊이 팔 수록 점차 흐려짐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물을 마실 때 들려왔던 속삭임이 다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몸을 이루려거든 눈을 돌려 이곳으로도 속히 와야 할 것이다. 황량한...구덩이로."
눈이 흐려지고 귀가 멍해지더니 그대로 모든 게 검게 변해버렸다.
"정신차려, 로이딘!"
거세게 뺨을 때리고 있는 루네. 그녀가 매몰차게 뺨을 때린 이유 중 하나가 로이딘에게 앙금이 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막간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로이딘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해 보였다. 뺨을 쳐 보다가 가슴을 쾅쾅 치자 로이딘이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란 루네가 반쯤 엉거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헉!"
로이딘은 땀을 흘리고 있었고 모든 게 눈 안으로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 떠보니 다시 동굴 안이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자기 혼자 있진 않았다는 것이다. 시테온은 모닥불 뒤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누워 있었고 루네는 바로 앞에서 자신을 향해 주먹을 갈기고 있었다. 이 두 친구가 반가웠지만 설마 이 또한 꿈 속의 꿈인가 하고 로이딘은 자신의 뺨을 때려보았다. 멍한 표정으로. 그게 볼만 한 지 시테온은 조용히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가관이네"
루네가 심각한 표정으로 멍한 로이딘을 바라보며 물었다.
"야 너 괜찮아? 방금 엄청 끙끙 앓았었어."
로이딘이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머릿 속 이해의 과정을 거치고서야 그제서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어떻게 된거야? 우리가 캠프에서 의식을 잃은건 가? 아니 잠깐..."
루네가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캠프를 가긴 간 게 맞지?"
로이딘의 말에 시테온이 킥킥 웃어대다 등 뒤가 불편한 지 미간을 찌뿌리고 다시 벽에 기댔다.
루네가 살짝 짜증이 난 모양인지 까탈스럽게 말했다.
"뭐긴 뭐야! 캠프에서 우리 모두 정신을 잃어버렸잖아.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게 떨어지고!"
시테온이 말했다.
"나는 날아가서 꽝하고 부딪혔지. 벽에"
그제서야 방금 전에 보았던 모든 것들이 꿈인 것을 알고서야 로이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네가 물었다.
"아니 뭘 봤길래, 이렇게 어리둥절에다가 땀에 절어버린거야?"
"나 혼자 동굴.. 그것도 알 수 없는 곳인데 조각을 보았어"
그러면서 그는 벽에 그려져 묘사되었던 장면들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빗속에서 자신이 속삭임을 들은 것과 친구들이 어디있는지 애타게 찾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루네가 미소를 지으면서 뒤를 돌며 모닥 불로 돌아가려 했다.
"양심은 있네, 이제 일어나 좀 쉬어."
허나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로이딘은 마저 마지막에 들렸던 속삭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황량한 구덩이" 그곳에 조각이 숨겨져 있단 속삭임을 들었단 이야기를 하자 루네가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번엔 로이딘이 빤히 쳐다본 채 루네의 생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네가 입을 뗐다.
"만약 가게 된다면 만신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고생 꽤나 해야겠어. "상인들의 섬"이라고 크리넬 남쪽, 상인인지 해적인지 여튼 그 작자들 소굴이 있어. 우리 삼촌이 거래를 하러 간 적이 있거든. 그런데 거기보다 아래에 있는 섬들이라고만 난 알고 있어."
루네는 로이딘에게 시테온이 등에 큰 멍만 들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며 자기들도 눈 떠보니 동굴 안이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나가보니 캠프가 보이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굴에 있음을 알았다하며 다만 자기들 외엔 아무도 없었는데 누가 이곳에 자기들을 두고 떠난 건진 모르겠다 말했다.
그러자 로이딘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말 해 주었다.
"피데라야"
루네가 놀란 표정으로 고갤 돌리며 물었다.
"응, 뭐라고?"
로이딘이 답했다.
"너희가 나한테 오기 전에 막 병사들이 마차 쫓던 거 봤지? 그 마차의 마부가 피데라였어"
시테온이 산통을 깼다.
"로이딘, 너 아직 꿈 속이야? 정신차려!"
로이딘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나타난 빛나던 글씨와 마주치자 미소 짓던 마부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피데라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으로 잠시 적막이 흐르다가 시테온이 말했다.
"그럼 어디 가신거야? 우릴 놔두고"
루네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감 없어 보이는 농담을 건넸다.
"원래 신은 바쁘시잖아"
시테온이 뭔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루네에게 대꾸했다.
"그 바쁜 게, 피조물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아서 그런거야? 아니면 정말 인간사에 개입하기 바빠서 그런거야?"
루네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능청스레 정확한 답을 피했다.
"알아서 생각해보도록 해"
81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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