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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n 25. 2020

헬씨올리고, 의식적 호흡

- 소리는 높이되 자세는 낮추려면 의식적 숨결  -

한때 식음을 전폐하며 보던 프로가 있다. 바로 K팝스타다. 박진영 심사위원이 ‘공기 반 소리 반’을 한창 소리치던 프로다. 음악 하면 사족을 못 쓰기도 하지만 공기 반 소리 반 참가자가 있는지, 어찌 그리 변할 수가 있는지 확인 차 즐겨봤다. 내가 내는 소리는 출발점이 ‘목’이었다. 목에서 공기가 드나드는 소리, 일명 나들목이다. 사람은 만족을 해야 행복감을 느낀다. K팝스타는 대리만족으로 행복을 추구하게 했다. 이처럼 대리만족 주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에 있던 사람들. 바로 달리기와 등산을 즐기는 자다. 평정심의 소유자, 이들이 동경 대상인 건 ‘호흡 반 동작 반’이기 때문이다.


근력운동으로 복근이란 게 생겼다. 유산소운동으로 달리기와 계단 오르기가 가능해졌다. 뼈가 이상해 시작한 운동이 오히려 근육 따라 뼈가 곧추서게 되었다. 힘의 원리로 몸이 정렬된다. 근력이 몸을 세우는 만큼 자세도 열린다. 열린 공간으로 공기가 들락댄다.  동작과 호흡이 같은 박자다. 그동안 의식이 동작에 머물렀지만 호흡과 한 배를 타게 되었다. 숨 넘어 가던 호흡이 구렁이 담 넘듯이  일상까지 넘어왔다.    


이전 글에서 꿈쩍 않던 추가 들어 올려지고 1분이 40분까지 달리게 되고 공중에서 놀아났던 두 다리가 지면까지 맞닿은 변천사를 논했다. 호흡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복식호흡이란 것 자체가 어려웠다. 공기를 들이켜고 배가 불룩해지는 것만 신경 쓰다 초장에 끝나버리는, 그런식호흡. 내쉬는 숨에 집중해 내 안의 것을 모조리 배출하면 들이마시는 건 절로 되는 것을. 양 갈비뼈에 손을 갖다 대면 열린 흉곽이 닫히면서 양손이 깍지로 만난다.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간다. 호흡은 의식과 마음, 근육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다.  


호흡이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가스 교체만은  아니라 했다. 우리 몸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과 우리 몸 사이의 에너지 교류라면서. 거대한 에너지 창고인 우주로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고, 몸 속에 고여 있는 낡은 에너지를 배출해 몸 안의 에너지를 항상 신선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것, 그리하여 신체의 생명력을 왕성하게 하는 것-이것이 바로 ‘호흡’의 진정한 의미라 했다(「뇌호흡」, 이승헌, (주)한문화, 40-41P).


한때 난, 급한 성격에다가 계획과 다른 상황에 놓일 때, 1:1을 넘어서는 숫자 앞에서는 심장과 호흡이 2배속을 달렸다. 이젠 숨이 코에서 출발해 생각, 마음, 근육세포를 거쳐 입에 다다른다. 날숨을 익히면 들숨은 절로 되듯이 호흡 경로가 만들어지니 심장과 폐도 더 이상 중노동을 안 한다. 호흡은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표현한 가을과도 같다. 열매를 위해 잎을 버리듯, 기존의 성취를 과감하게 비우고 그 비움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존재, 그래야 겨울의 적막과 침묵을 견뎌낼 수 있다고.(「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고미숙, 북드라망, 222P)      


거울은 얼굴이나 몸통 보는 도구였다. 이젠 거울은 가슴팍으로 드나드는 공기 재는 도구다. 호흡이 길어지니 음미하는 양도 는다. 코가 받아들이는 양, 가슴이 늘어나는 양, 세포 구석구석 온 몸을 돌아 입으로 내뿜는 양, 배가 쪼그라드는 양을 느낀다. 나태주의 유명한 시 ‘풀꽃’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자세히 오래 보니 잠깐 볼 때보다 더 아니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이 안타까울 뿐이다.


운동은 내 호흡을 자세히 오래 보도록 했다. 근력운동을 하면서 힘조절 호흡을 알았다. 유산소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면서 긴 호흡을 만났다. 호흡은 성장의 척도다. 운동을 하니 호흡이 좋아지고 호흡이 되니 운동이 더 효과적이다. 호흡은 숨결이다. 숨결은 숨 쉴 때의 상태나 속도, 높낮이 또는 사물 현상의 기운이나 느낌을 생명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국어사전)


머리가 지끈지끈 맹맹할 때 흔히들 말한다. 기분 전환으로 어디 콧바람 좀 쐬고 오라고. 몸이 공기청정기 노릇하며 자체 해결한다. 자연과도 숨결을 함께 한다. 눈이 바람 쐬는 격이다. 내 몸이 호흡에 집중하듯 나무도, 꽃도 각자 자기 호흡을 느낄 것이다. 내 호흡에 집중하면 남탓 화살도 자신으로 우회한다. 어제보다 나아진, 어제보다 길어진 호흡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숨이 내게 붙어 있는 한, 의식적 호흡은 둘도 없는 인생의 반려자다.  


추운 날 창문도 깊은 숨과 만나면 진한 낙서장이 된다. 얄팍한 숨에는 휘발성 자국에 불과하다. 타자와 호흡을 같이 한다면 공기 반 소리 반 숨결로 나 역시 K팝스타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삑사리 나던 음도 긴 호흡이 무마시켰다. ‘고성방가(高聲放歌)’에서 ‘고성반가(高聲半歌)’가 된 느낌.


긴 호흡은 소리는 높이되, 자세는 낮추게 한다. 이제 한 계단 밟았다. 누군가와 호흡을 같이 하려면 더 깊은 숨으로 의식을 화들짝 깨워야겠다.  


작년말 공기 반 업무 반으로 호흡하던 호주 출장, 그 공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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