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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Oct 17. 2021

땅만 보던 나, 이제 하늘 보다

살다보면 어째 그리 고개 숙일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일할 때나 밥 먹을 때나... 심지어 머리 감는 것마저 영화속 장면처럼 샤워기와 마주하질 않는다. 머리카락 떨어지는 게 싫어 쪼그려 앉아 수챗구멍그릇에 머리를 조아리니 고개 쳐들 기회를 또 잃는다.

먹을 때도 음식이 중력에 목구멍을 타넘을까 무서운 양, 고개 떨궈 음식만 바라본다. 굴비라도 천장에 매달아 놓아야 할 판. 어려서 자주하던 과자 던져 받아먹기라도 해야 할 판.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게 고개 빳빳이 들어?, 라도 해야 할 판.

스마트폰도 눈치없이 사무실은 '고정적' 개념이 아니라 하니 이놈의 목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정체성을 잃을 지경이다. 뒷목 잡을 일 없으려면 책도 박쥐처럼 읽을 판.

그러던 중 폴을 만났다.

코로나19로 운동 백수를 겪던 시절, 반복되는 일상과 달리 반복되는 동작을 벗어난 운동은 없을까, '의무' 아닌 '안무'로서의 운동을 찾던 중, 폴을 만났다.

처음에는 두 손으로 폴을 잡고 바닥에서 발을 뗄 수 있나, 를 연습한다. 두 발 떼는 건 물론 몸도 끌어 올리고, 이눔의 고개도 하늘 향해 바라보는게 아닌가. 그동안 살면서 고개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폴댄스의 첫인상, 우린 이렇게 출발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고개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다. 내 턱을 고상하게 잡아끈 게 바로 폴댄스였다. 거꾸로 매달린 자세 마저 고개들어 땅과 마주한다. 고개 들어보니 00엄마, 00팀장이 아닌 내 자신이 보였다. 분위기 잡으라고 배경음악도 깔린다. 뱅글뱅글 돌려 띄워주기도 한다. 매일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깨 통증도 잊게 한다.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자신이 정한 예술성에 만족하면 잘하는 거다. 연령대나 직책 따윈 필요 없다. 동작이 왜 안 되는지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대나무숲처럼 쇠붙이 폴 사이의 동반자, 하늘과 땅을 잇는 폴 사이의 나. 각기 다른 스토리와 같은 목적 의식으로, 따로 또 같이 우린 폴을 향해 고개를 들 뿐이다.

숙여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어야 가장 아름다운 고개이지 않을까.

* 폴댄스를 처음 배울 때 샀던 옷이다. 부끄러워 치마를 둘렀는데 하도 미끄러워 살을 붙일 수밖에... 배운 거 실패지만, 아이 드럼 학원이 중요해 원샷 영상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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