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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Oct 31. 2021

속는 셈 치고 일단 한 번 웃어봐

최근 웃음을 많이 잃었다. 얼굴을 인식하니 무표정이 많았다. 빵을 통 먹질 않아 그런지 웃음마저 이스트처럼 부풀어 빵 터질 일이 별로 없다.

이래뵈도 생긴 거 믿고 한 때 개그우먼이 꿈이었던 사람인데. 늘 웃음을 참지 못해 억지로 슬픈 생각 끌어다 참았던 사람인데. 교육이나 강연에서 웃음 피드백으로 강사들이 좋아하던 사람인데.

유머 수준이 높아진 건지, 웃을 환경이 줄은 건지, 내가 각박해진 건지, 세상이 각박해진 건지. 암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웃음치료사처럼 혼자 있더라도 박수치며 박장대소 하기도 참 멋쩍다.

그러던 중 <나는 101세, 현역 의사입니다> 책을 보았다. 저자의 45가지 건강 습관 중 '웃음을 선택합니다'가 있었다. 웃음이 NK세포를 활성화시켜 면역과 노화에 과학적으로 입증됐으니 속는 셈 치고 매일 3분만 웃어 보란다. 힘들 때에도 웃으면 뇌가 '재미있다', '즐겁다'고 착각해 신기하게 재밌는 일이 생긴다며.


출퇴근만 하더라도 40분은 넘으니 어디 그래 즉석요리 시간, 그깟 3분 내가 할애 해 주마, 속는 셈 치고, 미친 척 하고, 마스크 안에서 입꼬리를 내내 바이킹처럼 만들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니 부릅 뜬 눈도 입과 데칼코마니가 된다.

뇌가 단순한 건지, 내가 단순한 건지, 화가 났다가도 밥 먹으면 풀리는 것처럼 평소 신경 쓰이던 부분도 구름처럼 흘러가고 이해 못 할 상황도 역지사지가 되었다. 그리 자비롭지 못한 내가.

그동안 목덜미 아래 근육만 신경 썼지 얼굴 근육엔 영 소홀했다. 말 수도 줄은 데다 먹을 때만 입주변 근육을 놀려댄 것 같다. 뱃살은 그대로고 얼굴 살이 빠질 때 배신감과 서운함이 드는데 얼굴 근육 운동하니 볼떼기 살에 탄력도 생긴 듯하다.

세수할 땐 웃는 얼굴로 아래 그림과 같이 얼굴 꼬집기 운동을 하고 있다. 뇌 속에 얼굴(손)이 차지하는 신경이 이렇게나 많은데 안 할 이유가 당췌 없다.



우먼센스 10월호 잡지에 윤혜진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한때 발레리나로 이름을 떨쳤던 윤혜진. 엄태웅의 아내이자 엄정화의 시누이, 한 아이의 엄마, 인플언서로 활동하는 윤혜진에게 물었다.

Q: 요즘 윤혜진을 웃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A: 못다 이룬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요. 어린 시절 방송헤 출연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했어요. 그런데 40대가 된 지금 저에게 기회가 생겼잖아요? 꿈같은 일이죠. 그리고 패션사업을 하게 된 것도 어릴 적 접어둔 하나의 꿈을 이룬 것이고요. 발레리나의 삶으로 그칠 줄 알았는데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린 거에요.

요즘 내가 소리내어 웃은 건 뭐였더라.

머리 늘어뜨리고 서울 회의 출장 갔다가 파견 나간 팀장에게 오랜간만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팀장(男)이 내게 한 인사는 "네... 근데 누구랑 싸우다 오셨나요?"였다. 거울 보고 웃게 해 줘 퍽이나 감사했다.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부서장(男)이 "내가 겉모습은 예민해 보여도 지내다 보면 아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해, 내가 "전 생긴 것과 달리 지내다 보면 예민해요."라고 하니, 부서장(男)이 "겉모습도 그래 보여요" 한다. 학창시절 웃음이 터져 버렸다.

또, 백신 2차까지 잘 맞으셨냐는 나의 질문에 부서장(男)은 "내가 백신을 맞았던가? 두 번 다 어째 아무런 반응이 없나... 내가 그리 무딘 사람인가?" 라고 했다. 그 대답 덕에 난 웃으면서 2차 백신 맞고 폴댄스와 클라이밍 100% 출석하게 됐다.

신발이 필요하면 길 가다 남의 발만 보이고, 가방이 필요하면 남의 등만 보인다. 웃음이 필요하니 2년 전 아들이 새해소망으로 쓴 꽃 메모가 눈에 띠었다. '지못미'는 이럴 때 쓰는 멘트인가. 눈물 쏙 빠지도록 웃기고 또 웃는, 그런 웃음 해픈 엄마가 되리라.



어릴 적 듣던 동네 약장수 멘트도 생각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속는 셈 치고 일단 한 번 먹어봐."

날이면 날마다 오는 오늘이 아니다.

속는 셈 치고 일단 한번 웃어봐.

뇌는 좋아라~ 진짜 속더라.

실없이 웃든, 마지못해 웃든, 어이없어 웃든, 웃겨 자빠지든, 11월부터는 웃음 보따리 좀 풀어 보자. 속는 셈 치고.

또 누가 아나. 윤혜진처럼 어릴 적 꿈을 이룰 수도.

그럼 박장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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