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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Jun 23. 2022

감탄사가 늘어났다는 것은

초록빛 식물의 힘

"꽃다발은 굳이 왜 사는 거지?"


선물 아이템 중에 제일 만만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 꽃다발이었다. 받는 건 아쉬웠어도, 줄 때만큼은 제일 먼저 찾는 후보였을 텐데도. 시들면 버리게 될 꽃을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 내 핸드폰 사진첩을 보면, 곳곳이 알록달록하고 푸르다. 선물한 꽃, 길 가다가 발견한 꽃, 심지어 화병에 꽂아두기 위해 직접 사거나 모시고 있는 꽃과 식물들 덕분이다. 나이가 들면 꽃이 그렇게 예뻐 보인다더니, 나도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요즘 반려식물을 돌보는 식(植)집사 열풍이 불고 있다. 내 가까운 친구도 팔로워 1,400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며 홈가드닝에 푹 빠졌다. 꽃 시장에 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종자나 묘목을 공동구매하거나 심지어 당근마켓을 통해 팔며 식테크를 해내기도 한다. 친구의 부지런함과 생활 방식에 새삼 감탄. 그 밑바탕에 있는 식물의 초록빛 에너지를 다시금 들여다본다.


나도 회사 사무실에서는 만세선인장, 집에서는 크루시아 화분을 돌보고 있다. 만세선인장은 아는 동생이 꽃 가게를 열면서, 축하의 의미로 팔아주겠다고 데려온 화분이었다. 그나마 손이 덜 가고, 키우기 쉽다고 여겨 선인장을 데려온 것인데. 생각보다 너무나 잘 자라주고 있다. 몇 주 사이 자기 몸의 반 이상 쑥쑥 커버렸다. 역설적으로 물을 많이 줘서 초록빛 별로 보내고 말았던 예전 선인장의 기억을 멋지게 뒤집어버렸다. 물을 주고 표면을 만져보면 그 물을 다 빨아들인 듯 탱탱한 느낌이 든다. 정말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크루시아는 올해 생일 선물로 받았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받았는데, 처음 사이즈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의 내 무릎 정도 높이의 긴 상자가 집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아니, 사진에서는 분명 책상 위에 놓을 만한 크기였는데...?' 포장을 뜯어보니 이게 웬걸. 엄청난 높이의 에어백 사이 귀엽게 포장된 화분이 나왔다. 이리저리 이동하는 동안 무사히 도착하기 위한 조치였겠으나, 과대포장으로 지구에게 미안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3~4주마다 흠뻑 물을 주고, 햇빛은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정도로. 속흙까지 바짝 말랐을 때 물을 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잎들이 조금 넓어지고 키도 살짝 커진 듯하다. 사랑스럽다는 기분마저 든다.


동네 지하철 역에 꽃집이 있는 것, 회사 근처의 꽃집에도 괜히 들러보는 것. 벚꽃이 만발한 봄철 외에도 꽃을 향한 기웃거림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꽃과 식물이 좋아지고 있다. 활짝 핀 모습에만 반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 지는 그 모든 순간과 과정들을 향해 조금씩 감탄사를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작은 것에도 감탄사가 늘어났다는 뜻인 것 같아 뿌듯하고 감사하다. 행복함을 얻는 방법과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났다는 뜻일 테니까.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종종 쓸 것 같으니, 한 편으로 완결을 내고 싶지 않다. 다음엔 또 어떤 식물 예찬을 하게 될지, 나도 스스로 기대가 된다.


"오늘 꽃이나 구경하러 가볼까?"


왼쪽이 2021년 6월, 오른쪽이 2022년 12월. 지금도 잘 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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