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옥비와의 만남

[추억의 가평 MT] 신청자는 열 명 남짓이었다. 영실이 모르는 얼굴들뿐이었다. 그런데 명단을 보던 순간, 그의 눈이 멈췄다. 그곳에 옥비의 이름이 있었다.


도로는 막히고, 동기들의 도착은 늦어졌다. 일찍 도착한 영실은 경로, 상우, 성민과 맥주를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암을 이겨낸 친구, 사업에 실패했다가 다시 일어선 친구, 누군가는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고통을 지나왔지만, 그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밝았다.


영실은 술잔을 들며 생각했다.

‘그래, 다들 힘들게, 그렇지만 멋지게 살아왔구나.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어. 우리 모두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제 남은 인생은 아름답게 살아보자.’


그는 갑자기 술을 따르며 외쳤다.
“야, 우리 오랜만에 완샷하자!”

“야, 영실이가 먼저 말 다 하네. 너 원래 이렇게 말이 없었냐?”

“하하, 그건 아닌데... 일단 한잔하자.”

“영실아 그거 중국술이야, 도수 높아. 그래도 네가 하자니까 해야지.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그들은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오후가 되자 늦게 도착한 친구들까지 모두 합류했다. 다들 웃옷을 벗어 던지고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나이는 분명 쉰이었지만, 그 물살 속에서는 다시 스무 살이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바위에 앉은 영실에게 상우가 와인을 건넸다. 영실은 와인을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 행복이란 멀리 있지 않구나. 로또가 아니어도, 부자가 아니어도, 이렇게 숨 쉬고 웃을 수 있는 지금이면 충분해.’

가슴이 벅차올랐다. 영실은 갑자기 바위 위로 올라섰다.

“나 다이빙한다~!”

“임영실! 임영실! 임영실!”

친구들의 환호성 속에, 영실은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찰나의 고요.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쌌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새로 태어난 자신을 느꼈다.


해가 저물었다. 모닥불이 타오르고, 고기가 익는 냄새가 잔디밭 위로 번졌다. 기타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번졌다.경로가 노래를 시작했다. 하나둘씩 따라 부르고, 웃음과 박수가 어우러졌다. 영실은 그저 조용히 웃으며 잔을 들었다. 대학 1학년, 그때의 MT와 똑같았다.


아무것도 가진 건 없지만, 모두가 빛나던 시절.

그리고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을 때, 영실은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그때, 어둠을 뚫고 한 여자가 걸어왔다. 모닥불 빛 속으로 긴 생머리가 흔들렸다.

“안녕, 친구들~~”

그녀였다.
옥비.

옥비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옥비야, 미국엔 누구랑 살아?”

경로가 술잔을 건네며 물었다.

“나 혼자야. 일에 빠져서 연애만 하고, 아직 결혼은 못 했어.”

“무슨 일 하는데?”

“테슬라. 전기차 설계 쪽이야.”

영실은 얼어붙은 듯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30년 전,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했던 그 말… 그걸 정말 이루었구나.’

그때 옥비가 영실 옆에 앉았다.

“너 혹시, 기계과 영실이 맞지?”

“응, 맞아. 옥비야, 오랜만이야.”

“넌 하나도 안 변했다. 스무 살 때 그 모습 그대로네. 난 많이 늙었지?”

“아니야. 넌 여전히 예쁘다.”

옥비는 웃으며 잔을 들었다.

“나 옛날에 정규랑 사귈 때, 정규한테 너 얘기 들었었는데.”

“응? 무슨 얘기?”

“너, 나 좋아했다며.”

“하하하~ 그건 옛날 일이지. 그때 우리 과에서 널 안 좋아한 애가 있었겠냐.”

“그래도 고백은 해봤어야지. 그랬으면, 나랑 사귀었을지도 모르잖아.”

영실은 대답 대신 잔을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엔 별이 흩뿌려져 있었다.

“옥비야, 저기 봐. 별 떴다.”

“그러게. 정말 예쁘다.”

그들은 잠시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모닥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별빛을 삼켰다.

그때 경로가 기타를 다시 잡았다.
“이 노래 알아? 우리 때 가요톱10 1위였던 곡인데, 이거 기타로 치기 쉽지 않지만… 한번 쳐볼게.”

기타 줄이 떨리며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슬픈 노래는 듣고 싶지 않아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네가 다시 나를 찾아와
나는 긴긴 밤을 잠 못 들 것 같아


그 노래는

그때, 학력고사 끝나고 버스정류장에서 옥비와 함께 듣던 바로 그 노래였다.

불빛 사이로 옥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영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 지으며, 잔잔히 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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