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은 ‘타바’ 라이딩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 오랜만에 느낀 동기들의 온기, 땀의 냄새, 그리고 함께 달리던 그 바람의 기억이 그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이번에는 여행 소모임에도 가입했다.
나이 오십. 세월은 흘렀지만, 처음 만난 동기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직장이나 이해관계로 엮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그저 같은 시절을 살았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만으로 이어진 사람들. 그 사실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여보, 나 여행 소모임에도 들어갔어.”
아내가 웃으며 물었다.
“동기들 만나니까 그렇게 좋아요?”
“응, 좀 신기해.
서로 다른 과,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면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기분이야. 그들의 30년이 압축돼 내 앞에 펼쳐지는 느낌?”
“그 정도예요?”
“그럼. 30년 만에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들이 살아온 세월을 짧은 대화로 엿보는 거야. 한 편의 인생 다큐를 보는 것 같아.”
아내는 미소를 지었다.
“근데 여행 소모임이면 여행을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꼭 그런 건 아니야. 일정 보니까 등산 겸 트레킹도 있고, 캠핑도 있더라. 꼭 멀리 가는 건 아니고, 그냥 하루 이틀 같이 걸으며 쉬는 거야.”
“캠핑도 한다고요? 당신 텐트도 못 치잖아요.”
“하하, 거기 캠핑 고수들이 많더라. 심지어 어떤 친구는 침낭 하나 들고 다닌대. 텐트는 가져오기만 하면 도와준대.”
“그래서 가보려고요?”
“응. 돈도 나눠 내니까 부담 없고, 그냥 우리 때 MT처럼 한번 가보려 해.”
“어디로 가는데요?”
“가평이라던데.”
그날 아침, 영실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은 익숙한 길을 가리켰다.
‘가평.’
그 단어가 가슴을 두드렸다. 운전대를 잡은 손끝이 묘하게 떨렸다.
‘왜 하필 가평이지? 그때도 가평이었는데…’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이 나이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다시 MT를 가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차창 밖으로 가을빛이 스쳐 지나갔다. 낙엽 냄새가 들어오고, 라디오에서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해도 비 오는 소리만 처량해
비 오는 소리에 내 마음 젖었네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이렇게 비가 오는 밤이면 내 지친 그리움으로 널 만나고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난 너를 찾아 떠나갈 거야
김건모의 노래였다. 그 멜로디가 공기 중을 맴도는 순간, 영실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래, 옥비가 있었지…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떤 얼굴로 살아갈까?’
그는 천천히 창밖을 바라봤다.
햇살이 고개를 내밀며 비구름을 헤집고 있었다. 가평까지 가는 길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마치 30년 전 그날로 되돌아가는 시간의 복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