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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17. 2023

매일 '인턴'의 앤 해서웨이처럼 뉴욕으로 출근하기

피곤한 출근길을 피곤하지 않게 하는 방법


오늘의 곁들임 





Movie
인턴



Music
Lauv - I like me better 







To be young and in love in New York City 

To be drunk and in love in New York City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인지 물었다. 순간 사계절의 풍경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꽃구경 가기 좋은 봄, 바다로 놀러갈 수 있는 여름, 그림같은 풍경의 가을, 코코아 한잔과 난로 앞의 겨울. 저마다의 매력과 장점이 있어 잠시 고민하겠지만 역시 초여름이 최고다. 



봄이 지나고 조금씩 더워지는 여름의 초입의 감성을 담아낸 푸릇푸릇한 영화를 신중하게 고른다. 여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인턴'이 그러하다. 인턴은 브루클린과 맨하탄의 풍경을 잘 담아내면서,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마실 커피를 내린다. 앤 해서웨이처럼 커피를 마시며 바쁘게 맨하탄 거리로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영화는 뉴욕의 직장인이 일하는 모습과 일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브루클린의 빨간 벽돌 거리들은 성수동과 닮았다. 브루클린 덤보에 가면 그 유명한 맨해튼 브릿지가 보인다. 해가 뜨고 맨하탄 브릿지에 햇살이 은은하게 비추면 하루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한 손에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고 커피를 마시며 회사로 향한다. 주인공 '줄스'가 다니는 회사는 맨해튼에 위치해있는데 맨해튼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인데 싶었는데 맨해튼의 빌딩숲은 여의도와 닮았다. 그럼 성수동에 살면서 여의도로 출근하는 나도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출근하는거 아닐까? 



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엔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군.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라우브의 I like me better를 듣는다.

 


To be young and in love in New York City 

To be drunk and in love in New York City







라우브의 목소리 덕분일까? 여의도가 뉴욕으로 바뀐다. 내가 좋아하는 토스트와 샌드위치를 파는 단골집에 들린다. 아메리카노와 리코타치즈샌드위치를 받아들고 한껏 기분을 낸다. 샌드위치나 베이글이나 빵 속에 끼워 먹는건 다 똑같지 뭐. 영화 속의 앤 헤서웨이처럼 CEO가 되어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영화의 제목이 인턴이고 배경이 사무실이었기 때문일까, 취업준비생이었던 적이 떠오른다. 공채시즌이 오면 사회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대기업에 혼신을 힘을 다해 쓴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자기소개서를 쓴다는 것은 정말 많은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한 기업의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서는 그 기업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고, 분석하고, 내가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피력해야 했다. 서류 제출기간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한 기업의 면접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지만 서울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나는 행여라도 정장이 젖을까 고이 쇼핑백에 담은 후 쇼핑백을 안고 걸었다. 몇번의 면접이 계속된 끝에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디게 되었다. 출근하기 전날은 설렘반 걱정반이었다. 다음날 입을 옷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며 회사에서 실수하지 말고 잘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일이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선배들은 바빠서 나를 가르쳐줄 시간이 없어보였고, 사수에게는 매일 혼나기 일쑤였다. 서울에서 내 몸 하나 누울 좁은 방 한칸을 유지하는 건 비쌌고 그 방에 있으면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누가 툭하면 건들면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고 싶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펑펑 울고 나면 괜찮아질 것 같은 밤들의 연속.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과 싸워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조금 더 버텨보자, 조금 더 잘해보자.



줄스가 주문했던 '파트너스 커피'처럼 멋있는 카페에서 당당하게 커리어우먼이 될거라고 다짐하며 상경했지만 내가 마실 수 있었던 커피는 1500원짜리 대용량 커피뿐이었다. '사회생활이 이런걸까?' 

외로운 마음에 한강을 따라 걷다보면 수많은 아파트들이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수많은 아파트들을 지나 고시원으로 향했다. '내가 꿈꾸었던 한강은 이게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내일도 출근하려면 일찍 자야겠다.' 


 

누구나 떠올려보면 '인턴'이었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우리 사회가 20대에게 방황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더 빨리' 취업할 것을 요구하고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할 것을 요구한다. 경력이 비어있다면 면접 단골 질문은 '이 시간에는 무엇을 하셨어요?'다. '재수했어요, 어학연수 갔어요.'로 답해야하지 '쉬었어요.'로 답해선 안 된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진 사람들은 남보다 뒤쳐졌다고 생각해 더 빨리 가려고 열심히 산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20대는 확고한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때이다. 20대는 인생에서 '인턴'인 시절인 것이니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사회 인식이 빨리 바뀌긴 어려우니 스스로라도 자신을 아껴주자.


'00야, 너 그동안 잘했어. 모은 돈 없어도 돼. 지금은 실패할 때이니까.'

This isn’t the time to make hard and fast decisions. This is the time to make mistakes.



지금 알고 있는 이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덜 아파했을텐데. 그땐 그저 더 많이, 그저 더 빨리 고지에 올라야한다고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의 생각에 충실히 따랐다. 지금이라도 나 자신에게 실패할 시간을,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을 줘야지. 


줄스도 회사의 CEO지만 아내와 엄마로서는 초보이다. 또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줄스도 처음부터 CEO이진 않았을 것이다. 줄스는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일과 가족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고, 벤은 그런 줄스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분명 줄스가 벤을 고용하였기에 벤이 인턴인 것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줄스가 인턴처럼 보인다. 벤이 줄스에게 조언을 해주는 장면을 볼 때마다 누가 누구의 인턴인지 헷갈린다. 줄스는 인생 경험에 있어서는 한참 부족한 '인턴'이다.



누구나 자신의 분야가 아니고서는 인턴일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인턴'이었다. 




벤은 이미 은퇴를 하였기에 취미 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도 되지만 일이 하고 싶어 인턴으로 일하게 된 인물이다. 그런 벤의 가치관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요가하는 '벤'의 모습과 함께 '사랑과 일, 일과 사랑. 이것이 인생의 전부다' 프로이트의 명언이 나온다. 


인생의 전부가 일과 사랑이라는데! 어찌 처음부터 잘하겠는가? 앞으로 벤처럼 40년은 경험해야하니 조급해지지 말자고 마음먹어보자.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일으켜 출근길에 나선다.  줄스가 뿌렸을 법한 모던한 감성을 가진 캐시미어 우드 향수를 가볍게 뿌린다. 셔츠 속으로 파고드는 향이 순식간에 세련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 잠시 고개를 들어 창 밖으로 들어온 햇살을 느껴본다. 그동안 바빠서 보지 못했던 하늘이 참 파랗다. 피곤한 출근길을 조금이나마 덜 피곤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회사 1층에 위치한 커피숍에 들린다. 과일향이 나는 산미 있는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마신다. 카페인이 혈관으로 흐르며 깔끔하고 상쾌한 맛이 입안에 맴돈다. 그래, 인턴이었을 적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지! 나 완전 괜찮은데? 오늘 하루도 힘내자는 나만의 주문을 외운다.



때마침 흘러나온 Lauv 노래에 이런 가사가 들린다.

'I like me better when I'm with you' '난 너와 함께 있을때 내 자신이 더 좋아져.'

'I like me better when I'm with you' 너와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아진 느낌이야.'



I like me! 내 자신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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