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의 대통합 이론 - 자유 에너지 원리
부친께서 작년 말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파킨슨씨(Parkinson's)병 이라는 무척이나 힘들고 고달픈 병과 싸워오셨습니다. 처음 질환에 대한 판정을 받고 관리를 철저해오셨기 때문에 그나마 오랫동안 활동도 하시고 어느 정도 건강을 유지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착역을 모르는 두렵고도 외로운 고난의 터널을 혼자 걸어가셔야만 했습니다.
파킨슨씨 병은 신경전달물질이라고 알려져 있는 도파민의 분비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일어난다고 합니다. 손떨림으로 시작하여 점차 온몸의 움직임이 어눌해지고 뻣뻣해지기 시작합니다. 움직임뿐만 아니라 말년에 아버지는 잦은 의심과 환각과 섬망 증상을 호소하시기도 했습니다. 부친의 섬망 증상은 거의 조현병(Schizophrenia)에 가까운 증상이었습니다. 마지막 몇 개월간은 대낮에 눈을 뜨고 꿈을 꾼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주치의는 이를 두고 파킨슨씨병을 넘어 치매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부친뿐 아니라 대부분의 파킨슨씨병 환자들이 말년에 유사한 증상을 보입니다.
정신과 질환은 치료는 말할 것도 없고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뇌가 너무나도 정교하며 복잡하기 때문에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진단도 쉽지 않습니다. 같은 파킨슨씨병이라도 환자에 따라 진행도 차이가 큽니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이론으로 원인을 규명하려 하지만 때로는 오히려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파킨슨씨병 외에 알츠하이머, 조현병, 자폐증 등이 미디어에도 많은 소개가 되었던 대표적인 난치병들도 모두 비슷한 실정입니다.
도대체 뇌는 어떻게 작용을 하기에 이렇게도 파악하기가 어려운 걸까요. 우리가 뇌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이런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있을까요? 정신과 의사로서 기존의 미시적인 의학적인 접근 대신 철학적이고도 수학적인 도그마로 뇌의 작용을 설명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칼 프리스턴(Karl Friston)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학자입니다. 런던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 의과대학 교수인 프리스턴은 fMRI (기능성 자기공명영상)를 이용한 뇌의 이미징에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2000년 초 그의 논문과 저서에서 자유 에너지 원리(Free Energy Principle)라는 야심 찬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마치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통일장 이론으로 세상의 모든 물리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프리스턴은 자유 에너지 원리를 통합적 이론으로서 뇌질환뿐만 아니라 뇌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는 뇌의 원리를 모델링하는 데 있어 통계 수학과 통계역학을 집중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유에너지 원리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모두 통계학적인 단어들입니다. 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유 에너지'는 열역학에서 다루는 개념입니다. 자유에너지는 생존과 연관되어 있어 최소화되어야 생명체가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에너지를 낮게 유지한다는 것은 일관성 유지, 생존에 위협이 되는 변화를 없애는 것을 의미합니다. 뇌(internal states)는 생존을 위해 외부 시스템(external states)의 변화를 감지(sensory states)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지한 것에 따라 적절히 반응(active states)을 해서 자유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간단한 도그마를 확장하여 프리스턴은 뇌뿐만 아닌 모든 생명체의 행동, 뇌의 질환, 새로운 인공지능의 개발의 가능성까지 설명을 합니다.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며 떠다니는 미생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미생물이지만 그 행동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양분의 농도가 만족할 만큼 일정하다는 것은 자유에너지가 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 속의 영양분이 어떤 위치에서 고갈이 되거나 농도가 떨어진다면 미생물은 생존을 위해 능동적인 추론(active inference)을 하여 더 이상 (영양분이 낮은 농도 쪽으로) 진행하지 않거나 (농도가 높은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진행을 멈추거나 돌아가는 것을 감지(sensory state)에 따른 반응(active state)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 능동적 추론을 하는 것이 바로 뇌가 하는 주요 역할입니다. 그리고 외부 상태와 내부 상태를 구분하는 것을 마르코프의 블랭킷(Markov's blanket) 또는 마르코프의 경계라고 부릅니다.
프리스턴은 이상 설명한 자유에너지 원리를 뇌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스턴과 그의 공동 연구자들은 뇌 전반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몇가지 사례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해셕에 따르면 파킨슨씨병, 중독증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같이 운동, 보상체계에 각각 별도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의 기능, 즉 감지에 따른 반응을 정확하게 해 줄 수 있는 역할만을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도파민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폭넓게 뇌의 기능에 관여를 한다는 의미이므로 앞으로의 뇌질환 연구에 중요한 단서로 보고 있습니다.
그밖에 최근 자유 에너지 원리를 적용한 연구로 뇌세포가 직접 컴퓨터 게임인 '퐁'을 하는 경이로운 모습이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호주의 한 스타트업 회사가 개발한 시스템으로 인공뇌를 제작하여 컴퓨터와 같이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아래 링크를 보시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tStbn-t0zOc
자유 에너지 원리와 능동적 추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