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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Aug 19. 2024

엄마표 텃밭,-미국에서 성공하다!

엄마의 도전이 나의 도전이 되다


야! 여기다 깻잎 모종 심자! “


엄마가 시카고에 오자마자 한 일이 하나 있다. 우리 집 화단에 채소 모종을 심는 일이었다.


집 정문에 작으만한 화단이 양쪽으로 있는데,  덩그마니 비어있는 한쪽 화단의 흙밭이 엄마의 눈에 뜨였나 보다. ‘미국은 땅이 좋아서 뭐든지 심으면 잘된다며!’ 하며 대번에 나를 이끌고 한국마켓으로 달려갔다.


엄마의 관심사는 땅이었다. 뭐 라도 한 가지 심어 농사를 짓고 결실을 보는 재미가 붙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몇 해 전에 제법 큰 텃밭을 일구었다.  집 근처에 있는 땅을 일 구워 배추, 고추, 상추, 고구마등을 재배했다.


매일,  손수 수레를 끌고 가서 땅을 일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일을 했다. 텃밭을 관리하는 일이 힘들긴 했어도 그 연세에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컸던 것 같다. 게다가 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은  한동안 식탁에 풍성한 먹을거리를 주는 등 솔솔 한 재밋거리였다


그러니 엄마 눈에는 조금만 땅이라도 놀고 있는 땅이 그렇게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엔 , 엄마가 모종을 우리 집 화단에 심자고 했을 때,  퍼뜩, '어? 잘될까?'하고 겁부터 먹었다. 왜냐면, 나는 식물이나 꽃을 키우는 일에 재주가 없다. 항상 실패다.


일단, 식물이든  꽃이든 예쁜 마음에 무작정 사 들인다. 물 주고, 알뜰살뜰 마음도 주고, 잘 다듬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심지어,  누군가가 애써 잘 키운 식물도 '잘 키워봐~' 하면서 줄 때가 있는데, 희한한 게 내 손에 들어온 지 얼마 못 가서 말라 비틀어 버린다.


나로서는 해마다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더 웃긴 건,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해마다 오월이 되고, 앞집, 뒷집에 놓인 꽃들을 보면 불끈~하고 꽃을 또 사 들인다.


작년에 실패한 꽃은 그 순간 잃어버린다. 하지만.. 끝까지 꽃을 피우지는 못한다. 앞집, 뒷집의 꽃들이 한창 피어오를 때쯤  나의 꽃들은 시~들하며 죽고 만다.


주위의 아는 어르신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전문적인 농사꾼들이다. 먹고, 남아서 나 같은 사람에게도 나누어 준다. 그런 걸 보면, 신기하다.  '놀라운 손이야' 하고 항상 부러울 뿐이다.


아무튼, 나의 '꽃 죽이는  흉측한 손‘에 대한 푸념은 이렇다.  그런데 이런 딸을 알고 있는 듯, 엄마가 앞장섰다. 언니까지 합세해서  '한국 채소를 재배하자고!" 하면서 팔을 걷어 부쳤다.  


 상추, 깻잎, 고추 3가지 모종이 심어졌다. 엄마와 언니는 둘이 번갈아서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물을 주고, 가꾸고, 애정했다.


나는 남의 채소밭 보듯 '어? 잘 될까? 정말 잘 될까?' 하고 의아해하면서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어르신(엄마와 언니)들의 손은 확실히 무슨 재주가 있기라도 한가 보다.


어느 날부턴가...  심어진 모종들이 기적처럼 싹을 피우며 뻗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추가 돋아 나고 , 고춧잎이 번성하면서 고추가 매달리기 시작하고,  깻잎이 가지에서 울창해지기 시작했다.


'야! 한국 농사된다! 돼!' 하고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한국 채소 재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특히 깻잎에 정성을 쏱았다. '아이고 이 귀한 깻잎아" 하면서.^


한인마켓에서 깻잎을 사 먹으려면 꽤 비싸다. 나는 워낙 깻잎을 좋아하는데, 누군가 집에서 기른 깻잎을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제야말로, 여름 내내 향긋한 깻잎을 맘껏 먹을 수 있다. 비빔밥, 부침개, 무침 등등 깻잎을 가지고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너무 많다. 게다가 나도 누군가에게 좀 생색내며 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단돈 몇십 불을 투자해 일궈낸 채소밭을 가졌다는 것에 갑자기 너무 행복해졌다. 당장 올여름은 돈 벌었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워서 깻잎, 상추에다 텃밭한쪽에서 자연스럽게 자란 민들레까지 살짝 곁들여서 싸 먹으면 진짜 맛있다. 거기에다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먹는 맛은 여름날의 별미다.


엄마가 텃밭을  만들자고 했을 때, ‘안 돼! 안 돼!, 못해! 못해! 했다면 어떡할뻔했어? 요즘 우리 텃밭에 무성해지는 한국의 창조물(?)을 매번 보는 일은 신기할 뿐이다.


텃밭에 영양을 듬뿍 주고 있다. 그 영양이란 것이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들여다보고, 만지고, 애정하는 일이다. 소위, 농사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열매는 그냥 맺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시카고에 와서 나에게 준 선물은 '한국식 텃밭'이다. 늘 뭘 키우지도 못하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 된 것이니까.


해마다, 이 텃밭에 한국산 채소를 키우며 엄마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제발 잘 자라 다오, 별 탈 없이.

아무래도.. 내년엔 꽃도 다시 사들이고, 키워보아야 할 것 같다. 텃밭을 다듬어 본 나의 손이 좀 더 노련해지지 않을까?. 이제 못할 것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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