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문제와 증거의 비대칭성
오늘은 재밌는 실험 이야기와 함께 중요한 인지편향을 다뤄보겠습니다.
(인지편향이란, 인간이 자주 하는 실수라는 뜻이에요.)
오늘 알려드릴 실험은, 미국의 심리학자 P.C. Wason이 진행한 "규칙 찾기"실험입니다.
참고로, 초등학생도 풀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에게는 숫자 3개짜리 수열 "2-4-6"이 주어집니다.
이 수열은 "2배씩 커지는 수열"이나 "3씩 줄어드는 수열"같은 어떤 규칙에 따릅니다. 피험자의 임무는 그 규칙을 찾는 것이죠.
물론 2-4-6만으로는 규칙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피험자들이 숫자 3개짜리 수열을 불러주면,
연구진은 그 수열에 규칙에 따르는지 아닌지만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자면,
피험자가 10-12-14라고 한다면 실험자는 "규칙에 맞다"라고,
피험자가 1-4-2 은 실험자는 "규칙에 맞지 않다"라고,
피험자가 8-10-12는 실험자는 "규칙에 맞다"라고 알려주는 식이지요.
위의 예시들을 봤을 때, 여러분들은 규칙이 뭔지 눈치를 채셨나요?
여러분의 가설이 맞는지 어떤 수열로 확인할 건가요?
충분히 고민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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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공개합니다.
우선, 아마 여러분이 생각한 규칙은 "2씩 커지는 짝수"일 겁니다.
(실제로 피험자 95%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직 확신할 수 없다면, 4-6-8이나, 6-8-10 같은 수열이 규칙에 따르는지를 확인하시겠죠.
만약 그러셨다면, 사실 여러분들은 95%의 피험자처럼 틀리셨습니다.
(사실 저도 이 실험을 처음 봤을 때 똑같이 틀렸어요!)
사실 정답은, "점점 커지는 숫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정답을 찾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2-4-6을 보고, 2씩 커지는 짝수라는 관념에 갇혀서 그 이상을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규칙에 따르는 4-6-8이나 10-12-14는 확인해도, 규칙에 따르지 않는 1-3-5나 2-6-10 같은 반례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람이 가진 흥미로운 경향인 "확증편향" 때문입니다.
확증편향이란 쉽게 확신하고, 그 확신을 뒷받침하는(=강화하는) 증거를 찾는 경향이죠.
확증편향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실제로 옳은지"보다 "옳은 이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실험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부합하는 증거가 모여도 옳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6-8-10처럼 내가 가진 잘못된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증거를 100개 1,000개를 모아도 실제로 내가 옳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실험에서도 "2씩 커지는 짝수"라는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는 무한히 만들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답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반면, 내가 틀렸다는 사실은 2-6-10 같은 반례 하나만 있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틀렸다는 증거 1개가 옳은 증거 1,000개보다 강력합니다.
이를 두고 증거의 비대칭성이라고 합니다.
추론의 세계에는 근거의 수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선거처럼 근거의 개수가 많으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각 근거의 가치를 따져봐야 하며, 지지하는 근거가 가설을 입증하지는 않습니다.
수학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든 답을 찾으면 그만이지만, 추론 문제는 이런 점에서 다릅니다.
이런 면에서, 정말로 정확한 예측을 하고 싶다면, 내 가설이 틀릴 가능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2씩 커지는 짝수"에 집착하지 말고, "2씩 커지는 홀수" 혹은 "짝수 3개" 같은 대안 가설들을 찾고, 이를 하나하나 검증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안 가설들을 반증했다면 내가 옳을 확률이 정말 올라가며 더 강한 확신을 가져도 되지만, 만일 더 그럴듯한 대안 가설을 발견했다면 내 추론을 뒤집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추론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지 않아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내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늘어나면 마음이 편할지는 몰라도, 실제로 내 정확도가 올라가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이 이겨내기 어려운 이유는, 안타깝게도 애초에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인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 어려운 이유"에서도 밝혔듯, 우리는 내가 원하는 세상(=내가 옳음)과 실제(=내가 틀릴 수 있음)를 동일시합니다.
추측과 현실과 욕망을 혼동하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계속 의식해야 합니다.
확증편향을 이겨내기 위해 찰리 멍거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상대방보다
잘 설명하기 전에는 반박하지 마라
증거의 비대칭성을 인정하고, 확증편향을 이겨내기에 이만한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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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백전불패"라는 말을 아시나요? 사실 이 말은 틀렸습니다. 손자병법 원문은 "지피지기 백전불태"로,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근거를 많이 모은다고 꼭 옳은 추측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틀릴 가능성에 주목하면 위태로울 가능성(=블랙스완)은 피할 수 있습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근거 1,000개보다 적절한 반례 하나가 더 유익합니다. 그래서 내가 틀릴 가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틀릴 가능성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백전불태, 즉 위태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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