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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known Unknown과 로또번호 맞추기

알지 못해도 행동해야 할 때

by 프로디

20년 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전을 일으킨 근거를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음을 아는 것(Known Knowns)이 있고,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Unknowns)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주 유명해져서, '럼즈펠드 매트릭스'라는 프레임워크도 만들어졌습니다.

Screenshot 2025-03-01 at 14.57.49.png https://en.wikipedia.org/wiki/There_are_unknown_unknowns


럼즈펠드 매트릭스의 핵심은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이 있음을 알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블랙스완과도 이어지는 내용이지요.


럼즈펠드가 말했듯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은 실제로도 벌어집니다. 좋은 예시는 1986년 벌어진 NASA 챌린저호 폭발 사고입니다.

1334px-Challenger_explosion.jpg 출처: Kennedy Space Center

1986년 NASA의 챌린저호는 6mm 두께의 고무 오링(O-ring) 때문에 폭발했습니다. 이전 발사에서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챌린저호 발사 당일은 날씨도 유독 추웠고, 다른 오류를 점검하며 야외에서 2시간가량 방치되며 고무링이 탄성을 잃었으며, 여기에 우주선에 급변풍까지 불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우연이 겹칠 가능성을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예측할 수 없는 일(Unknown Unknown)은 벌어지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이렇게 보면 럼즈펠드가 기자에게 추측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을 한 수 가르쳐 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보면 실상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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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즈펠드의 진실

하지만 이 이후에 럼즈펠드가 한 말은 알려져 있지 않죠.


사실 이 부분이 재밌습니다.


기자는 "그럼 (이라크가 테러조직을 지원했다는 증거도) 모르는지도 모르는(Unknown Unknown)건가요?"라고 질문한다.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이 사실 없다고 인정한 거 아니냐?라는 질문인데, 이에 럼즈펠드는 답합니다.


(어느 쪽인지) 답하지 않겠다
I'm not going to say which it is


여기 영상도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이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묘한 답변이죠.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 같지만 사실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셈이고요. 이 말 이후 럼즈펠드는 기자의 질문을 끊습니다.


아무 영양가 없는 정치적 수사처럼도 보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Unknown Unknown인 이라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도덕적 정당성을 떠나서, 살다 보면 알지 못하지만 행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테러 위험도 같은 경우죠. 확실하지 않더라도 테러의 위험이 너무 크다면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큼의 확신이 있을 때 움직여야 할까요?


럼즈펠드는 전쟁을 일으키기에 적절한 확신을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답을 제시합니다.



지난주 로또번호 맞추기

아마존의 창업가 제프 베조스는 2016년 주주서한에서 "70% 규칙"을 제시합니다. 이는 아마존 직원들이 원하는 정보의 70%를 얻었을 때 의사결정을 내리라고 지시하는 내용이지요. 원하는 정보를 다 얻을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을 낭비할 수 있으니 70% 정도면 일단 빠르게 움직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에 해결하라는 신속함에 강점을 둔 지시입니다. 의사결정에서 정확도만큼이나 시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확한 결정도 조금 늦는 순간 그 가치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주 로또번호를 맞추는 것처럼요.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심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경우죠. 가장 쉬운 예시는 무단횡단입니다. 무단횡단을 하면 초록불을 기다리는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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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점심메뉴를 잘못 정한다고 치명적인 일이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잠시 기분이 나쁘고 말 뿐이며, 저녁을 더 맛있게 먹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가 됩니다.


제프 베조스는 2015년 주주서한에서 의사결정을 의사결정을 1형과 2형으로 나눕니다. 1형(Type 1) 결정은 무단횡단처럼 치명적이고 중대한 결정(mission-critical, high-impact choices)이고, 2형(Type 2) 결정은 점심메뉴처럼 위험이 적거나, 해결 가능한 결정(lower stakes choices)입니다. 베조스는 2형 결정은 빠르게 결정하고 나중에 수정하면 되나, 1형 결정을 서두르면 생존하기도 어려워진다고 경고합니다.


즉, 치명적이거나 복구불가능한 의사결정은 조심해야 하는 반면, 저비용 의사결정은 시간의 가격까지 고려해서 신속하게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치명적인 위험을 평가할 때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한 이유로 틀릴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모든 가능성을 고민했을 때, 이렇게 답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사소한 결정은 빠르게 내리고,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치명적인 위험을 최대한 대비하기.

그리고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항상 의식하기.


예상 밖의 일을 대비하는 좋은 방법은 안전 마진인데요, 이 내용은 다음에 다뤄보겠습니다. 구독하시면 알림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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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 책 슈퍼 예측

- Jeff Bezos 주주서한 (20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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