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번다

[한 살배기 1.2] 금전의 바다에서 헤엄쳐라

by 라벤더핑크

독립을 머뭇거리고 있다면

독립을 머뭇거리고 있다면


이십 대, 처음으로 독립을 꿈꾸고 맛보는 나이다.


엄마 눈엔 제멋대로 흐트러진 방에 지나지 않지만 내 나름의 경험치와 노하우에 따라 최적화된 동선과 나름의 규칙으로 배열된 물건들이 엄마 잔소리 폭격 및 청소로 깨끗이 정돈된 후 막상 나는 내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게 되어 버렸을 때,

평일 피로에 찌들어 휴일에는 그동안 못 잔 만큼 늦게까지 꿀잠 자리라 굳게 맘먹지만 새벽잠 없고 늘 부지런하신 엄마의 세탁기, 청소기, 압력밥솥 3종 콤보 세트 소리를 알람 삼아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져 버렸을 때,

특별한 날 친구들을 불러 파자마 파티라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나 홀로 집에 캐빈이 부러워 무한 돌려보기만 할 때,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아도 될 나만의 독립된 공간에 목말라하게 된다. 이런 목마름이 요즘 한창 핫한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이 큰 사랑받게 된 배경이 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렇듯, 나. 혼. 산을 애청하면서도 독립의 기로에서 머뭇거리는 이가 있다면, 독립이 가져다줄 달콤한 상상에 취하기 전에 이것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경제적 독립



일단 영어 점수 획득이란 한 고비는 겨우 넘겼지만,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경제적 문제이었다.

교환학생에 선발되는 기준은 갖췄으나, 교환학생에 선발되더라도 부모님이 계속해서 반대하신다면? 최악의 경우 부모의 반대에도 나는 법적으로 20대를 넘긴 성년이고, 내 의지와 의사로 나의 길은 결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소 생활비 월 100만 원으로 잡더라도 비행기 티켓에 여유돈까지 못해도 1500만 원은 수중에 있어야 하는데 학생인 나에게 그런 큰돈은 없었다.


그래서 진정한 독립이 이뤄지려면 우선 경제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환학생 준비를 하면서 나는 언어보다 큰 충격은 문화의 차이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다른 문화에 익숙해 지기 위해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많이 보려 노력했다. 문화를 접하다 보니 서양의 경우, 대학생 정도 되면 일찌감치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독립을 하고 부모님도 본인의 삶을 살면서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캥거루족'이란 말이 성행할 정도로 대학 학비는 물론, 취업이 안 되는 백수 시절 용돈에, 결혼하면 혼수나 집까지 부모님께서 마련해주는 것이 으레 당연한 절차처럼 자리 잡았고, 정작 그렇게 호주머니를 탈탈 털리면서 부모님 자신의 노후는 준비하지 못해 늙어서는 자식에게만 목매여 노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되면 자식도 부모도 둘 다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노후 문제는 외국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도 경제적 독립을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생각했던 것은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였다. 시간 대비 시급이 높았고, 몸이 고되지도 않을 것이고, 수업시수만 채우면 되기에 내 개인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수업 준비를 하면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생활화하면서 돈도 버는 일석이조였다. 토플 시험을 치고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자 나는 바로 영어 강사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다. 한국의 3월 학기제와 다르게 9월 학기제인 외국 대학 학부의 시작에 맞추려면 나는 1년 반을 휴학해야 했다. 10여 개월 정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듯했다. 나는 이때 초중고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일하는 것이 곧 영어공부고 연습이라 교환학생의 준비가 되고,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수업의 준비가 되어 교환학생에서의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일종의 상호보완 알고리즘으로, '갈까 말까 게임' (일명 gostop)의 전문용어로 치자면, 기술 중에서도 상급의 고급진 기술에 속하는 이른바 '일타쌍피'를 꺼내 드는 노련함을 발휘했던 것이다.

나는 9개월 동안 열심히 배운 영어를 까먹지 않도록 싫고 귀찮더라도 매일매일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면서 동시에 내가 필요한 자금의 대부분을 마련했다. 사실 비행기 티켓과 몇 달치 생활비만 있다면 캐나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되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캐나다로 가서는 걱정 없이 온전히 학업과 적응하는데 충실하고 싶었고, 어차피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남아도는 시간은 충분했기에, 그렇게 당시 학생으로 벌 수 있는 평균 시급 이상의 금액을 손에 넣었다.


사실, 경제적 독립이 중요하다고 또 한 번 느꼈던 것은 캐나다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부모님 돈으로 어학연수를 온 친구를 만났을 때이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온 것이 무척 간절했던 일이었고, 내 생활비를 내손으로 벌었던 터라 나 스스로 계획하고 부모님 허락 없이 돈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한국에서 다시 캐나다로 여행 오려면 왕복 비행기 값이 더 든다는 생각으로 기회만 닿으면 친구들과 주변 지역을 여행 다녔다. 하지만 부모님 돈으로 어학연수 온 친구는 어찌 보면 시작은 나보다 편하고 쉽게 캐나다로 건너왔긴 하지만, 쉽게 얻은 것은 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고 했던가. 여행 하나를 가도 부모님 허락을 맡아야 했고, 그 친구도 착한 딸인지라 큰 비용이 든다 싶으면 가고 싶은 여행도 스스로 포기하려 들었다. 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왔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놀러 다니는 것도 최대한 자제하려 했다. 그리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나는 사실 캐나다에서도 힘들다 느꼈던 시기는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단 1초도 한 적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 1년이란 시간을 얻기 위해 나는 1년 반 동안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었기에 내게 주어진 시한부 같은 1년은 일분일초도 놓치고 싶지 않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난 비자 만료되는 1년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외국 친구들과 있으면 노는 것도 그저 영어 공부가 되었다. 또, 언어를 배우는 것보단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넓디넓은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 캐나다란 곳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각 국에서 건너온 여러 인연 자체가 귀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평일엔 공부와 운동, 주말과 방학이면 친구들과 가깝고 먼 캐나다 전역을 놀러 다녔다.


이런 점에서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길을 택한다면,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이미 풍족함이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널려있어 쉽사리 얻을 수 있다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직접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진다면, 소중하게 얻은 가치를 함부로 여기지 않고, 더 소중하고 의미 있도록 만들도록 집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런 과정에서 삶의 결정권이 본인에게 주어진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유란 단순히 속박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이십 대 나이에 독립이란 말이 마냥 멋지게 들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이 진정 빛날 수 있는 때는 그 대가와 책임을 오롯이 본인 컨트롤 아래에 둘 수 있을 때이다. 단순히 집을 따로 얻어 분가해 나가는 물리적인 독립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한다면 내 인생의 결정권도 부모님께 있는 셈이다. 대주주인 부모님께서 안된다고 하면 나는 그 결정에 따라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독립이 이뤄질 수 있고, 진정한 자유가 따라온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튜브에 의존에 둥둥 떠있다고 상상해 보라. 튜브 속은 안전하긴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팔이 튜브에 걸리적거려 멀리 나아갈 수 없고 방향 전환도 마음대로 하기 힘들다. 튜브가 없다면 처음에는 겁이 나고 힘이 들고 혹여 가라앉지 않을까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튜브를 벗어던지고 두 팔과 두 다리로 힘차게 노를 저어간다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는 튜브를 과감히 벗어던졌기에 오롯이 내 팔과 내 다리의 힘만으로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해 자유롭고 당당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지금 혹시 독립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우선 숨통을 꽉 조이고 나를 얽매는 갑갑한 튜브부터 훌러덩 벗어던라 권해주고 싶다.


그랬을 때 비로소 그 시원한 해방감과 양팔 자유로움을 완연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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